▲늦은 밤 병원 응급실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나 혼자 뚝 떨어진 행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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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오더니 일단 식염수 한 통으로 눈을 세척해야 한단다. 그날따라 노트북에 책까지 들어가서 미어터질 것 같은 가방과 머플러를 옆에 두고 한참 동안 세척을 했다. 이물감이 없어지기는커녕 식염수 세례를 받은 눈은 오히려 더 뻑뻑해졌지만 어쨌든 병원 안에 있으니 괜찮겠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졌던 모양이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생각해 보니 점심을 어묵 하나로 때웠고, 모임에 가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가 병원에 온 것이기 때문에 두 끼를 굶은 상태였다. 주변에 먹을거리를 살 만한 곳도 없었지만, 사실 무언가를 먹을 분위기도 아니었다.
허기와 무료함 속에서 한참 눈을 감고 내 이름이 불리기만 기다리고 있으려니 내가 아픈 것을 누군가에는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그 밤에 나이든 엄마에게 전화하면 공연히 놀라실 것 같아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갈게요. 언니." 그 말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밤중에 나오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금세 끝날 거라고 생각해서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대기 시간이 1시간 반을 넘어가고 환자들이 많아지면서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후회되었다.
'폐가 되기 싫어서 그냥 혼자 감당하고 말아야겠다는 독립심이 과했구나.'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 그 사이 내 이름을 부르거나 다녀와서 앉을 곳이 없을까봐 참았다. 눈은 계속 불편하지, 배는 고프지, 화장실은 가고 싶지. 속수무책으로 밀어닥친 3중고가 공연히 서럽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젊은 여성 한 명이 배를 움켜쥐고 들어오고 남자 한 명이 부축하며 들어온다. 외국인 중년 남성과 한국인 부인은 나처럼 오래 대기하고 있다가 몇 번이고 간호사에게 언제쯤 진료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 80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60대의 딸처럼 보이는 할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에서 나온다.
모두 어떤 형태로든 보호자가 있었다. 내 발로 올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질병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하면서도, 늦은 밤 병원 응급실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나 혼자 뚝 떨어진 행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그런 거야.'그렇게 애써 위로하면서 2시간 만에 의사를 만나 '급성 결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 11시에야 병원을 나섰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날따라 무겁게 느껴지는 가방을 들춰 매고 택시 정거장으로 향했다.
"나 아팠어. 지금 병원인데 데리러 와."누구한테든 그런 어리광이 부리고 싶은 밤이었다.
엄살이 심한 아빠는 조금만 아파도 엄마를 찾았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방 2개짜리 집에서 치매 걸린 시아버지를 모시며 똥 치우는 수발을 몇 년간이나 든 사람이다. 그때 내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할아버지를 정성껏 돌보는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엄마의 수고를 헤아리는 만큼 할아버지처럼 병든 채로 오래 살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고생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자기 몸이 아프면 봐달라고 엄살을 부리곤 했다. '왜 저러실까?' 싶을 정도로 그 모습이 못나 보였다. 어른이라면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할 것 같았는데, 내가 보기에 그때 우리 집에서 어른은 엄마뿐이었다.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아빠는 주변을 고생시키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