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지쳐 툭툭... 붉은 융단, 여기에도 깔렸네

'빨갛게 멍이 든' 동백꽃 낙화 풍경으로 아름다운 절집, 강진 백련사

등록 2018.04.08 15:52수정 2018.04.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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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낙화 풍경. 여행객들이 땅에 떨어진 꽃을 한데 모아 동백나무 옆 바위에 올려 놓았다. 강진 백운동정원에서다. ⓒ 이돈삼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활짝 핀 벚꽃이 많이 떨어졌다. 벚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꽃잎으로 꽃길이 만들어졌다. 대신 나무는 무수히 돋아난 새잎으로 또 한 번의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이보다 더 황홀경을 연출하는 곳이 있다. 떨어진 동백꽃으로 빨간 융단을 펼쳐 별천지를 이룬 절집이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에 있는 절집 백련사다.

모든 꽃은 활짝 피었을 때 아름다운 법. 하지만 피어있는 꽃 못지않게, 꽃잎 떨군 풍경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꽃이 동백이다. 가수 이미자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장사익이 애절한 목소리로 다시 불렀던 노래의 노랫말처럼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이 빨갛게 멍이 든' 동백꽃이다. 동백꽃이 낙화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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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활짝 핀 동백꽃이 많이 떨어져 있다.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 숲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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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부도밭의 동백 낙화 풍경. 나무에서 활짝 꽃을 피우고, 땅에서 두번째 꽃을 피웠다. ⓒ 이돈삼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을 지닌 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활짝 피고, 송이째 툭-툭- 떨어져 빨간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낙화 풍경으로 또 한 번 핀다. 내 가슴에, 여인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더 핀다. 나무에서, 땅에서 활짝 핀 동백 꽃물결을 보면, 동백꽃을 제대로 봤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느새 내 가슴에서도 동백꽃 몇 송이 피어있는 걸 알 수 있다.

동백꽃은 가슴 아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두메산골에서 만난 남녀의 애절한 사랑 얘기다. 서로 사랑하며 장래를 약속한 남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헤어지게 된다. 둘은 달 밝은 봄날 밤에 만나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남쪽에서 돌아올 때 동백나무 열매를 가져다주면, 그걸로 기름을 짜서 예쁘게 단장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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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적인 동백꽃. 새빨간 꽃잎과 노란 꽃술이 선명한 색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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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피어난 동백꽃. 동백꽃은 나무에서 먼저 꽃을 피운 다음 땅에서, 가슴에서 연달아 꽃을 피운다고. ⓒ 이돈삼


여자는 헤어진 뒤부터 남자가 돌아올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일 년이 가도록 남자한테서 소식이 없었다. 여자는 이미자의 노랫말처럼 수많은 밤을 아픔에 겨워, 그리움에 지치고 울다 지쳐서 가슴에 빨갛게 멍이 들어서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남자. 얼마 뒤에 돌아와 여자의 죽음을 알게 됐다. 여자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하며, 갖고 온 동백 씨앗을 심었다. 세월이 흘러 여자의 무덤가가 온통 붉은 동백꽃으로 물들었다. 하여, 동백꽃이 더 처연하게 보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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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길. 땅에서 꽃을 피운 동백꽃덩이가 길가에 지천이다.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떨어진 꽃으로 꽃융단을 깔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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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부도에 내려앉은 동백꽃. 빠알간 꽃이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부도와 어우러져 더 고혹적이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이돈삼


애처로운 전설을 지닌 동백꽃은 백련사로 가는 길목에 흐드러져 있다. 절집 부근에 수령 300년 넘은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붉디붉은 동백꽃과 강진만의 푸른 바다, 천년 세월을 품은 절집이 어우러져 있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부도밭,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부도와 버무려진 동백꽃이다. 동백나무가 우거져 어둑어둑한 숲까지도 환하게 밝혀준다. 황홀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풍경이다. 이 풍광으로 해마다 이맘때 많은 여행객들을 불러들이는 곳이 백련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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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부도에 내려앉은 동백꽃 한 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과 어우러져 감동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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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나무 숲에서 흐르는 작은 계곡의 동백꽃덩이. 초록의 이끼와 어우러져 색의 대비가 더 강렬하다. ⓒ 이돈삼


여행객들은, 떨어진 동백꽃으로 꽃융단이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서 탄성을 지른다. 지천의 꽃으로 땅바닥에 하트를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 놓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워한다. 이런 여행객들까지도 모두 꽃이 되는 동백숲이다. 매화 중 으뜸은 설중매(雪中梅)이고, 동백의 으뜸은 설중동백(雪中冬栢)이라지만 땅에서 피는 지중동백(地中冬栢)이 더 낫다는 걸 실감한다.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도 절로 흥얼거려진다.

동백꽃 봉오리는 나무 아래에도, 숲에서 흐르는 조그마한 계곡에도 흩어져 있다. 졸-졸- 흐르는 물을 따라 동백꽃이 살랑-살랑- 떠내려가는 모습도 한 편의 시(詩)가 된다. 동백꽃은 나뭇가지에도 무수하게 피어있다. 새빨간 꽃잎과 노란 꽃술이 선명한 색의 대비를 이룬다.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을 실감할 수 있다. 동백꽃덩이를 찾아 나선 동박새의 부산한 움직임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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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을 품고 있는 만덕산 백련사. 고려 말 천태종이 불교 개혁운동의 하나인 백련결사의 터전으로 삼았던 절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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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나무 숲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소나무의 뿌리가 드러나 '뿌리의 길'로도 불린다. ⓒ 이돈삼


정열적인 동백꽃을 만날 수 있는 백련사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절집이다. 신라 문성왕(839년)때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절집이다. 고려 말엔 천태종이 불교 개혁운동의 하나인 백련결사의 터전으로 삼았다. 예부터 차(茶)로도 유명한 절집이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도 호젓하다. 길이가 1㎞ 남짓 된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이 자주 오갔던 길이다. 다산과 당시 백련사 주지였던 혜장스님이 이 길에서 자주 만났다. 천주교를 신봉했던 다산이고, 불교도인 혜장은 종교가 달랐다. 나이도 다산이 10년 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길을 통해 자주 오가면서 격의 없이 만나 유학과 불교를 논했다. 차와 세상 얘기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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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에서 도암면 신기리 망호마을을 연결하고 있는 가우도 출렁다리. 강진만의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는 최근 강진여행의 시작점이 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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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정원의 동백꽃. 백운동정원은 다산 정약용이 남긴 시와 초의선사의 그림을 토대로 강진군이 복원했다. ⓒ 이돈삼


백련사 주변에서 가볼 만한 곳도 많다. 가우도가 가깝다. 강진만에 자리한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다. 섬에서 대구면 저두리로, 도암면 신기리로 두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사철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최근 강진여행의 시작점이 된 섬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중(1812년)에 들렀다가 풍광에 반해 13수의 시를 남겼고, 초의선사에게 부탁해 그림으로 남긴 곳이 백운동 정원이다. 시와 그림을 토대로 한 정원이 월출산 아래 월하마을에 복원돼 있다. 정원의 동백숲도 멋스럽다. 천년고찰 무위사도 지척이다. 벚꽃으로 꽃비가 내린 절집 금곡사도 강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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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정원의 동백나무 숲.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중에 들렀다가 풍광에 반해 13수의 시를 남겼고, 초의선사에게 부탁해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최근 강진군이 이 '백운도첩'을 토대로 옛 정원을 복원했다. ⓒ 이돈삼


#동백꽃 #동백아가씨 #동백낙화 #백련사 #백운동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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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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