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수행평가 과제였던 '레이업슛'을 나는 좀처럼 하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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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OO이한테 빵 하나 사주고 좀 배워라"
고등학교 체육시간 농구수업 때의 일이다. 당시 수행평가 과제였던 '레이업슛'을 나는 좀처럼 하지를 못했다. 체육교사는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수업을 마치고 반 아이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저렇게 말했다. 수업으론 안 되니 운동을 잘하는 OO이한테 따로 배우라는 이야기였다.
교사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를 보며 웃는 반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느꼈던 당혹감과 수치심은 지금도 기억에 있다. 나는 결국 수행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았고, 그 뒤로 농구공을 잡지 않았다.
남자애가 왜 이렇게 운동을 못해어릴 때는 운동을 그다지 싫어했던 거 같지는 않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책보고 만화 보는 것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동네 아이들과 가끔 어울려 자전거를 타거나 야구를 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실력이나 결과와 상관없이 같이 어울려 노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서 운동은 '성적', '남성성', '여성성'과 결부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체육은 즐기는 것이 아닌 성적을 받기 위해, (지정 성별) 남자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의무와 같은 것이 되었고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그렇게 운동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게 되면서 주변으로부터 "남자가 왜 이렇게 운동을 못 하냐", "남자가 왜 이렇게 허약하냐"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체육활동이 남성성과 결부한 것이다. 남자는 당연히 체력이 좋고, 운동을 좋아하며, 잘할 것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남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이러한 고정관념들은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타박받는 것을 넘어서, 앞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공개적인 무시를 당하거나 체육활동 전반에서 소외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동시에 주위의 성별 고정관념을 내면화면서 이것이 오히려 운동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중학교 무렵부터 주변의 남자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어, 나를 트랜스젠더로서 조금씩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별정체성을 탐색해가는 나에게 있어 체육활동은 남성성의 대표적인 상징으로서 기피해야 할 무언가로 느껴졌다.
즉, '나는 남성의 성별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자기 인식과, '체육활동은 곧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합쳐진 결과 '나는 체육활동을 열심히 하면 안 된다'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중고교 시설의 체육시간은 나에게는 썩 좋지 않은 기억들만을 안겨 주었다.
'남성적인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그러던 내가 운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 것은 대학생 때의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당시 나는 여성으로서의 성별정체성이 어느 정도 확고했음에도, 트랜지션과 커밍아웃을 했을 때 맞닥뜨릴 차별과 혐오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 결과 나는 20대 초반, 나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억압하고 그냥 '남자'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당시의 나의 막연한 생각은 이랬다. '만일 운동을 통해 '남성적인 몸'을 만든다면 평범한 남자로 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역시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몸은 남성적인 몸'이고 '남성적인 몸을 하면 내면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잘못된 결론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약 1년간 체육관을 다니며 근력 운동에 매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