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 조상연
a
ⓒ 조상연
어떻게 하다 보니 만년필이 50자루가 넘는다. 평균 50만 원으로 계산해도 2500만 원이다. 없는 살림에 적은 돈이 아니다. 몇 년 전 만년필 동호회가 있다는 걸 알았고 만년필도 중고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걸 알았다.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25만 원에 산 만년필을 5년 동안 실컷 쓰다가 다시 중고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30만 원을 받았으니, 제법 남는 장사를 했다. 만년필을 사러 온 사람이 필통을 꺼내놓더니 만년필 자랑을 한다. 얼핏 봐도 한 자루에 백몇십만 원짜리가 필통을 꽉 채웠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만년필이 있었다.
본래의 기능보다 소재와 디자인으로 가격 결정이 되는 만년필
a
ⓒ 조상연
일본도가 연상되는 곡선형의 특이한 만년필이다. 가격도 400만 원이 훌쩍 넘는 거로 아는데 자랑이 하고 싶어 몸살이 났다. 손에 쥐여주면서 부드러움의 극치를 맛 보란다. 만년필은 아무리 싸구려라도 오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길이 들어 부드러워진다는 걸 모르는가?
어찌 되었든 내 만년필도 사주고 해서 그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써보았다. 결론은 10/1 값도 안 되는 내 만년필만 못했다. 그래도 연신 "이야, 우와, 죽이네"를 연발하며 감탄을 해댔다. 그가 흐뭇해하며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만년필을 좋아했던 나는 만년필만 보면 항상 의문이 있었다. 200만 원짜리 만년필이 20만 원짜리 만년필보다 필기감이 왜 안 좋을까? 만년필 본연의 기능이 글을 쓰는 것이고 당연히 필기감 일텐데 열 배나 비싼 만년필이 열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배는 필기감이 좋아야 할 게 아닌가?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가?
a
ⓒ 조상연
결론은 디자인이었다. 물론 플라스틱이냐 레진이냐, 금 펜촉이냐 스테인리스 펜촉이냐 소재에 따른 것도 있지만 브랜드 가치와 디자인이 값을 정했다. 만년필 본래의 기능인 필기감은 가격에 크게 반영이 안 됐다.
브랜드 가치와 디자인이 가격을 결정하는 만년필, 유별나게 한정판이 많은 만년필, 그래서 중고시장을 서핑하다 보면 10~20년 전에 생산된 만년필도 거의 새것 같은 만년필이 많다. 만년필 마니아들이 수집만 해놓고 사용을 안 해서인데 혹시 고급 만년필을 써보고 싶은 사람은 인터넷의 만년필 중고시장을 꼼꼼히 살펴보면 시중에서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만년필을 반값에 구할 수도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