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사람보다 서울말을 빨리 배우는 이유

‘제8회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열려... "높낮이 없고 장단이 있어 쉽게 바뀌어"

등록 2018.05.08 09:18수정 2018.05.0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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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팀 참가…전남 무안 김정순 어르신 '질로 존 상'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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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펼쳐진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에서 질로 존 상을 수상한 김정순 어르신(오른쪽)과 진행자 지정남 마당극 배우(왼쪽). ⓒ 광주드림


"숭늉마냥 구수하고, 맛깔스런 김치 맹키로 개미있는 말."


지난 5일 펼쳐진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맛깔스런 전라도말의 매력을 찰진 전라도말로 표현했다. 청각뿐 아니라 미각까지 사로잡는 말의 향연.

월간지 전라도닷컴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공동 주최로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제8회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는 '멋․맛․흥을 오롯이 담고 있는 전라도 말을 지키고 이어가는 한마당'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번에도 참가자들이 전라도말을 뽐내며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가 좌중을 웃기고 울렸다. 어린이날을 맞아 대회장을 찾은 가족 단위 관객들도 대회 중간에 진행된 '전라도말 알아맞히기 퀴즈' 등에 참여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모습이었다.

먼저 10팀의 참가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 앞이라 떨리는 마음에도 마당극 배우 지정남씨의 매끄러운 진행덕에 긴장을 풀었다.

특히 올해는 전라도 사투리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이 많았다.


"전라도말이 얼매나 신기하고도요잉, 놀라운지 야기 하나를 할라 하요."

빨간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은 참가자 정옥임씨가 '전라도 사투리의 맛'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가 결혼을 해가꼬, 남편 직장 땜에 서울을 가서 쪼까 살았는디라잉. 처음에는 와따, 나가 사투리로 인자 말을 해쌍께 옆에 사람들이 웃음시롱 아조 지랄(?)들을 하는 것이여."

사투리로 힘들었던 서울살이 중에 정씨는 어느 순간 서울말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원래대로 한다면, '와따메 너 아정까지 밥도 안먹고 자빠졌냐, 언능 와서 밥 묵어라잉' 요렇게 해야 된디요. '어머어머 너 아직 밥 안먹었니? 그랬니? 저랬니?' 아, 요렇게 나오는 것이여."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씨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의 말은 다시 부산 사투리로 바뀌었다.

"여그 계신 양반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와서 그렇게 오래 살고 있음시롱 그 말이 어디 바뀝디까? 안 바뀌지라. 그란디 전라도말은 요상하게도 어디서도 변신이 되블더랑께요."

정씨의 질문은 그 자리에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대회장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목포대 이기갑 교수가 "경상도 사람은 성조의 영향으로 말투가 잘 변하지 않는데, 전라도 말엔 높낮이가 없이 길고 짧은 장단이 있어서 작은 영향에도 쉽게 바뀔 수 있는 언어적 특성"을 설명한 것.

정씨의 의문점이 해소된 후에도 전라도말은 변함없는 매력으로 남았다.

"그라고봉께 숭늉마냥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김치맹이로 개미가 있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밖에는 없습디다. 그라요 안 그라요?"

25살 청년 이승현씨의 '젊어도 전라도는 전라도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고금자 어르신의 '우덜이 쓰는 말이 촌스럽다고?'에서도 전라도말의 자부심은 이어졌다.

전라도말이 가진 특유의 해학과 유머로 풀어낸 "웃기지만 슬프고, 슬퍼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엔 관객들도 무릎을 탁 치며 공감했다.

전남 무안군 김정순 어르신은 "먹을 것이 암것도 없었던 시집살이"와 "'객기(노름의 전라도 말)'에 빠진 서방"이야기로 힘들었던 속내를 비췄지만, "오두막 인수해 두부 폴아 남기고, 장에서 곡슥장사 해 또 남기고, 셋째가 사준 집이 재개발돼 또 겁나게 남겼다"며 반전의 인생사를 실감나게 풀어냈다.

'내 말좀 들어주씨요~잉~!'으로 무대에 선 김정순 어르신은 이날 '질로 존 상(대상)'을 수상했다.

김기정씨의 '어찌끄나 너를'과 고금자 어르신의 '우덜이 쓰는 말이 촌스럽다고?', 이승현씨의 '젊어도 전라도는 전라도여', 정옥임씨의 '전라도 사투리의 맛'은 배꼽 뺀 상(인기상)을 수상했다.

어찌끄나 상(장려상)에는 김근수씨의 '개값이 얼마개?', 박민숙씨의 '묵은지 사랑', 서승례 어르신의 '덕석몰이'가 수상했고, 영판 오진 상(금상)에는 송우기씨의 '교장선생 아들놈 도둑됐네'와 김소희씨의 '집에서 돼지 키워 봤지라'가 수상했다.

한편 이번 대회 심사에는 이기갑 목포대 교수와 공선옥 소설가, 김도수 시인이 함께 했다. 프로젝트 앙상블 '련'이 국악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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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광주드림>에 실린 글입니다.
#전라도말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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