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반려견을 떠나 보내며... 포미는 '가족'이었습니다

등록 2018.05.24 22:42수정 2018.05.2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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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했던 포미
건강했던 포미 차노휘

4월 30일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 S동물병원 원장이 포미 보호자를 불렀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위에 목 아래 혈관이 잡히지 않아 양쪽 발목에 피를 빼고 밴딩을 한, 수액을 맞고 있는 포미가 누워있었다.


원장은 20만 원이 넘은 검사를 하고 난 뒤 자궁에 고름이 있거나 암일 것이라며 엑스레이를 찍은 모니터 까만 부분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암인지 고름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추가 검사를 한 뒤 곧바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며 결정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확률은 반반이라고 덧붙였다.

포미 배를 쓰다듬었지만 의식은 없었다. 독소가 몸 전체로 퍼졌을 것이라고 했다. 원장은 테이블에서 일어날 수 없을 확률이 크다고 강조했다. 어찌되든 책임은 회피하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렇게 죽는다면…. 포미가 매일 달리고 싶어하던 산책코스도 보여줘야 하고 그동안 고마웠고 많이 사랑했다는 말도 해야 하는데…. 체온이 남아 있을 때 따뜻하게 안고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나를 본 그녀

 한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너클링 현상이 일어났다. 이후 제대로 걷지 못했다.
한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너클링 현상이 일어났다. 이후 제대로 걷지 못했다.차노휘

원장은 내가 망설이고 있자, 자궁만 들어내면 3일 안에 팔팔하게 달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포미는 고령이었다. 말은 못해도 차가운 스테인리스가 아니라 집에서 임종을 원했을 수도 있었다.


그냥 내 품에 안고 병원을 나서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혹시나 돈 계산으로 녀석의 목숨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죄책감으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추가 검사 뒤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였다. 포미가 눈을 치켜뜨며 나를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속엣것을 토해낸 것이. 그리고는 축 늘어졌다. 원장과 보조 간호사는 혹 혀를 깨물까 싶어 입을 벌리는 기구를 장착하고는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나는 손가락을 포미 코에 댔다. 호흡이 점점 약해졌다가 마침내 끊겼다. 

"수술 받기 싫어서 먼저 가버렸나봐요."

원장이 말했다. 그럴 것이다. 10분 뒤에 갔다면, 확률 반반이라는 말을 들어 추가비용과 수술비를 다 청구했을 것을. 왜 내가 좀 더 편하게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을 때, 왜 반반인 확률을 거듭 강조하며 수술만을 권했을까. 안락사를 절대 원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10년 이상 녀석의 냄새를 묻히며 살았던 집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다. 목이 막혀 말이 끊어지는 내게 냉정한 보호자로 원장은 밀어붙이기만 했을까.

이미 늦었다.

나는 숨이 끊어진 것을 알고도 오물이 묻은 포미 털을 물티슈로 닦고만 있었다. 집에서 가지고 온 담요는 오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리고는 발목 밴딩과 수액을 빨리 빼달라고 했다. 병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담요는 버려달라고 했다.

모든 것이 제거 되자 포미를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콧물이 나오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간호사가 티슈를 건넸다. 그리고는 오물이 나올 수 있으니 패드에 싸서 데리고 가라고 했다.

계산을 하고 나가려하자 카운터 여자가 반려동물 장례 전문기업 팸플릿을 건넸다. 2시간 거리에 있는 근교도시였다. 그곳에서 화장할 수 있단다.

품에 안긴 포미는 호흡만 멈췄을 뿐 아직 따뜻했다. 평소대로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털을 하나씩 만졌다. 집에 와서는 제일 좋아하던 내 작업실 침대에 하룻밤 마지막으로 재우기로 했다. 오물 묻은 털을 닦아줬다. 제일 좋아하던, 심심할 때면 입에 물고 오던, 이미 낡아버린 인형을 녀석 품에 안겨주고 새 담요로 몸을 감싸줬다. 서서히 몸이 굳어갈 것이다.

끝도 없는 추억을 되살리자...

 낡아버린 장난감들
낡아버린 장난감들차노휘

그리고는 엉겁결에 들고온 팸플릿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집에 있는 세 녀석은 제 아내와 어미가 죽은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달리 얌전했다. 화장 시간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포대기에 싼 녀석을 무릎에 올려놓고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에는 딸이 앉았다.

 장례 과정.
장례 과정.차노휘

딸은 새벽에 두어번 포미를 본다며 자다 말고 작업실 침대로 왔지만 살아생전 포미와 사체를 구별했다. 사체를 사체로 봤다. 

10여 년간 같은 침대를 사용했던 녀석. 잠꼬대도 방귀도 잘 끼던 녀석. 인간관계로 상처받아 유폐되다시피한 내게 따뜻한 체온을 나눠줬던 녀석. 차가운 나를 처음으로 동물을 사랑하게 만든 녀석. 뒷다리가 불편해 자궁이 온전하지 않지만 깜찍한 두 녀석을 낳은 애엄마 녀석. 두어 번 죽을 고비를 넘겼던 녀석. 이틀 전까지도 간식을 잘 받아 먹던 녀석….

찬찬히 장례절차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유골함을 무릎에 올려놓고 운전했다. 딸과 포미와 공유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이야기했다. 끝도없는 추억을 되살릴 때마다 자제하고 있던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녀를 약사암이 보이는(무등산) 곳에 뿌려주었다. 어느 날 산행을 하는데 그곳에서 들리는 불경 소리에 끌렸던 곳이었다.
그녀를 약사암이 보이는(무등산) 곳에 뿌려주었다. 어느 날 산행을 하는데 그곳에서 들리는 불경 소리에 끌렸던 곳이었다.차노휘

#반려견 #동물보호 #개식용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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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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