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산성 성벽 산 정상부의 지형을 따라 둘러친 테뫼식 산성이므로, 성벽이 유려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홍윤호
온달이 죽임을 당한 아단성이 이 단양의 온달산성이냐, 현재 서울과 구리시 경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아차산 소재 아차산성이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란이 있다.
온달이 되찾고자 한 땅, <삼국사기>의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鷄立峴竹嶺已西)'은 오늘날 충주와 단양 일대, 남한강 중류 유역을 가리킨다. 이것만 보면 온달산성이 단양에 있으니, 전투 중에 온달이 사망한 곳이 온달산성이 맞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곳만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포함한 한강 유역 전체를 되찾고자 하는 표현(계립현과 죽령 서쪽이 최종적인 목적지, 즉 소백산맥 이북 지역 전체의 회복)이라면 서울의 아차산성이 맞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한강 하류 유역을 장악하고 한강을 따라 올라와 충주와 단양 일대를 공략하는 것이 일반적 수순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흥왕 때의 신라가 한강 하류 유역을 차지하는 역순서의 루트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구려군이 먼저 대군을 몰아 공략한 곳은 한강 하류, 즉 지금의 서울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신라로서도 한강 하류 유역을 빼앗기면 계속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강력하게 저항했을 테니 치열한 격전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온달군이 단양에서 신라와 싸우려면 한강 하류를 먼저 장악해야 하는데, 사료상 신라는 이 한강 하류 일대를 빼앗긴 적이 없다.
온달의 고구려군이 강원도의 산악 지대를 거쳐와 단양을 기습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왕의 사위가 이런 위험한 모험을 감수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한강 하류에 주둔한 정예 신라군의 측면 기습을 받거나 보급 루트가 차단되면 큰 위험에 빠지므로, 한강 하류 일대를 먼저 차지하고 한강을 따라 올라오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괜히 한강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군대와 물자의 신속한 이동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한강 하류 일대의 장악은 선결 조건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추정으로는 온달이 사망한 아단성은 서울의 아차산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학계에서 확실히 결정 난 것은 아니다(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한 이후 한강 하류 일대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고구려와 신라는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여 왔다. 그러므로 어쩌면 아단성은 서울 아차산성이나 단양 온달산성이 아닌, 한강과 임진강 사이에 있는 제3의 산성일 수도 있다).
단양군이 온달 캐릭터까지 만들어가며 온달산성을 군 상징으로 내세운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사실 개인적 심정으로는 이미 흔적이 별로 없는 서울 아차산보다 차라리 이 근사하고 경치 좋은 단양 온달산성이 그 역사의 현장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논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