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역 앞에서 유권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며 두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슬로건을 내세웠다. 구체적인 페미니즘 공약 한 가지만 소개한다면."이번에 성평등 공약이 매우 잘 준비됐다. 공약 중 하나가 '성폭력 성차별 현장에는 예산 1원도 쓰지 않기'다. 서울시는 매해 30조 원 이상을 갖는 거대한 지자체다. 이 엄청난 예산을 집행할 때 성폭력과 성차별이 없는 곳에만 예산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안으로 성평등 이행각서 정책이 있다. 예산 집행 시, 혹은 위탁 용역 지원 사업 시 민간단체들에게 성평등 이행 각서를 쓰도록 하는 것이다. 성평등 이행각서의 내용에는 성평등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이냐, 성평등한 조직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성폭력 예방 혹은 2차 가해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등이 담겼다.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그 조직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피해자를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메뉴얼을 촘촘하게 짤 수 있도록 이행 각서를 쓰게 하겠다. 또 이행각서를 잘 지킨 민간 기관들은 따로 성평등 일터 인증을 해서 인센티브를 주거나 서울시 용역 위탁 사업에서 우선 순위를 두겠다.
서울시 자체를 어떻게 성평등한 조직을 만들 것이냐에 대한 해답도 갖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4급 이상 개방직 직위의 여성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 8급 등 하위직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거의 비등한데, 4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록 남녀 비율이 거의 4배씩 차이가 난다. 개방직 직위부터 여성 50%를 채울 수 있도록 공개 채용하겠다. 또, 성별 임금격차를 공시하겠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모든 민간 영역의 성별 임금차를 고시하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들이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한 서울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돌봄 정책에 대해서도 손볼 부분이 많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돌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아빠한테도 자기 아이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남녀 모두 평등하게 돌봄자가 될 수 있도록 서울시부터 육아휴직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도록 하겠다.
박원순 시정 아래에서는 육아 휴직 전체 사용자 중 남성의 비율이 13%밖에 안 된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게 아직 굉장히 특이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저희는 그걸 의무화하려고 한다. '독방육아 방지조례'를 만들어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더 중요하게는 육아 휴직을 쓰고 나서도 경력 단절이 되지 않도록 육아호봉제를 인정할 예정이다. 육아휴직을 남녀가 공평하게 썼을 때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공약도 있다. '파파 쿼터제(남성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제도)'는 물론, 출산 후 육아시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도록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도 보장하겠다. 서울시가 앞장 서서 모든 이들이 돌보는 이가 될 수 있음을 제도적으로 보여주겠다."
정책 공약 한 가지만 부탁했지만 답변이 끊이지 않았다.
"또 젠더건강 센터라는 것도 있다. 지금 서울시 산하에 보건소가 25개, 시립 병원이 4개 있다. 여기에 젠더건강 센터를 설치하겠다. 이를 통해 초경 전부터 완경 후까지 여성들에 대한 피임교육은 물론 성교육, 임시중지에 대한 여성의 심리 건강지원을 실시하겠다. 또 현재 공공의료 시스템에서 계속해서 배제되고 있는 이주민 여성과 이주민 자녀들이 보건소에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성소수자분들이 커밍아웃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는 것도 문제다. 보건소에서 안전하게 커밍아웃 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 내에 계시는 의료인들에게 성평등, 젠더 감수성 교육을 계속 실시해 성소수자들이 철저한 안전 속에서 진료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물론 장애 여성 또한 함께 포함된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인정한 미프진도 구비할 예정이다. 현재 낙태죄 폐지 여부가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인데, 미프진이란 약은 바로 그 낙태죄 때문에 국내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약이다. 이걸 보건소에서부터 구비할 예정이다."
"박원순? 개인의 문제 아니라 세대적 한계"- 페미니즘 정책의 관점에서 박원순 시정 7년을 어떻게 평가하나."저는 박원순 시장은 386세대에서 나올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아주 훌륭하게 시정을 돌보셨다. 그러나 저는 그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한 가지는 이 세대는 민주화를 이룩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실제 민주주의 안에서 교육을 받아보거나 살아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 민주주의인지, 그 감각이 살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그런 점이 발견되냐면, 예컨대 작년의 미세먼지 시민 대토론회 같은 거다. 서울시가 숙의 민주주의의 원리로 진행한다면서 주최한 토론회에는 3000명의 시민이 모여서 3시간 동안 토론을 했다. 3000명이 3시간 토론한다는 게 가능이나 한 얘기인가. 새로운 정책이 발견되기는커녕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내기조차 어려운 형식이었다.
사실 이런 점은 문재인 정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 시민 공론화위를 만들어 시민들 500명을 모아 3개월 동안 토론하게 했다. 그 과정이 너무 급박했다고 본다. 8월부터 10월까지 공론화위를 열었는데 정부는 7월에야 공표했다. 처음 해보는 공론화위인데도 시민들이 이 사안을 어떻게 잘 이해하고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교육 받아 의견을 내고 토론할 지는 고민하지 않고 너무 성급하고 발 빠르게만 진행한 것이다. 이런 면이 아쉽다.
박원순 시장 정책 중 또 문제적이라고 보고 있는 건, 자꾸 정상 가구를 상정해두고 정책을 펼친다는 점이다. 지금 청년들은 어떤 정책적인 요구를 받고 있다. 어서 취업하고 결혼해서 애 낳으라는 거다. 이걸 계속해서 정책이 이끌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서울시는 20대 청년 세대주가 돈을 빌리는 것보다 신혼부부가 대출 받는 것에 훨씬 더 우호적이다. 그래서 서울시의 주거, 주택 정책들을 보면 신혼 부부가 20대 세대주나 청년 세대주보다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저리로 대출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결혼해야 지원해주겠다는 식이다.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도 신혼부부 아니면 청년 1인 가구 뿐이다.
하지만 지금 청년의 삶은 얼마나 다양한가. 비혼주의자도 있고 동성 커플도 있고, 친구와 함께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 다양한 이들의 삶을 정책 안으로 포섭시키는 게 아니라, 시민의 삶을 정책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잘 돌아갔다면 진작 바뀌었어야 하는 패러다임이다. 이건 박원순 시장이 잘못했다기 보단 정말 세대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민주주의를 펼쳐나가는 건, 그들 다음 세대의 정치에서 가능한 게 아닐까."
27세. 최연소 광역단체장 후보인 그는 박원순 후보는 물론 김문수·안철수 후보까지 모두 비판하며 세대 교체론을 주장했다.
"386은 586이 됐고 이 586들이 정부, 국회, 지방의회, 시청에 다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펼치는 정치를 보면 평등이나 인권에 거의 다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치는 게 있다. 바로 개발 사업이다. 김문수, 안철수, 심지어 박원순 후보까지 이번에 모두 지하화 사업을 주창했다. 이걸 보면 어떤 걸 더 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거다.이게 586 정치의 한계다. 586 정치를 벗어나서, 이제 한국 사회가 성장과 개발만 중시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올릴 수 있을지, 그리고 모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해, 정치권이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번에 페미니스트를 자임하고 후보로 나온 이유도 그거라고 생각한다."
- 세대 교체를 말하는 건가."패러다임이 전환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 패러다임은 박정희 때 시작됐다고 본다.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개발로 이어지면서 잘못된 난개발, 약자에 대한 배제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걸 바로잡는 패러다임은 평등, 그리고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저희가 여성뿐만 아니라 세입자, 자영업자, 성소수자, 청년 등 모든 약자들과 비인간 동물들까지 정책적으로 호명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문수? 정치하지 말아야... 안철수? 기술혁명은 사회 비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