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드 플로르 내부좌석노인이 신문을 읽고 있는 자리가 바로 사르트르가 즐겨앉던 좌석이다.
강재인
"여기도 '문학카페'였군요.""그런 셈이지. 하지만 뒤엔 디자이너들의 단골카페이기도 했지. 크리스티앙 디오르, 위베르 드 지방시, 이브 생 로랑, 피에르 카르댕...""와우, 쟁쟁하네요.""또 배우 장 폴 벨몽드, 알랭 들롱, 시몬 시뇨레, 가수 이브 몽땅, 영화감독 로망 폴란스키, 클로드 를루쉬..." 하필 이 카페로 모여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종의 사랑방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아빠는 추정하신다. 당신이 도쿄에서 겪으신 일인데, 단골 술집에 가면 직업이 유사한 동료들만 모이기 때문에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거기 가면 으레 만나고 싶은 친구나 지인을 만나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파리의 카페도 그런 성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온갖 정보가 모이니까 새 소식을 접하게 된다는 이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 정보가 다시 사방으로 퍼져나갔을 거고. 요즘의 인터넷 카페 같은 거였을까?
아빠의 설명을 듣고 있으려니 이곳 테이블에도 한번 앉아보고 싶어졌다. 노천 테이블에 빈자리가 나지 않아 우리는 결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오자 아빠는 거기 인쇄된 문구를 가리키셨다.
"Les chemins du Flore ont été pour moi les chemins de la liberté(플로르에의 길은 내게 있어 자유에의 길이었다)"사르트르의 문장이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온종일 글만 쓴다고 불평하던 카페 주인이 이제 와선 사르트르를 팔고 있는 셈이었다. 불평하던 사람은 플로르가 아니라 되마고 주인이었다지만 아무튼 멋진 카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에의 길이라... 하긴 이 카페가 좀 독특한 곳이기는 했지. 독일 나치스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말이야.""점령 기간에도 이 카페는 문을 열었나 봐요.""열었지."그러면서 아빠는 당시를 이렇게 묘사하셨다.
번쩍이는 가죽장화를 신은 나치 장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파리에 가면 말로만 듣던 플로르를 꼭 한번 가보겠노라고 별렀을 그 장교는 그래도 독일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도 웨이터도 누구 하나 독일장교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는다.
들어온 순간부터 모두 침묵하는 카페 안에서 점령군 장교는 갑자기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웨이터도 불러야만 마지못해 주문을 받고. 마침내 싸늘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게 된 장교가 밖으로 나간다. 그 순간 카페 안은 파안대소하며 왁자지껄해진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지 못한 파리 지식인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독일군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아빠, 그건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한 장면 같은데요.""허허, 그러냐? 하지만 카페 플로르에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던데. 전쟁 중에도 이곳을 드나들던 사르트르는 형편이 좀 궁했던 모양이야. 아파트 난방도 되지 않으니까 추위를 이기려고 술 한잔을 하긴 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 그래 주변을 둘러보다 문간 쪽에 앉은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지. '저, 우린 서로를 이해하는 부류라고 생각되는데 제 술값 좀 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날 술값을 내준 코가 크고 수더분하게 생긴 그 남자가 바로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였다는 것이다. 이 일로 친구 사이가 된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작품에 관한 본격적인 글을 두 편이나 써주었다. 사람을 골라 사귀던 사르트르가 가장 좋아한 예술가가 자코메티였다고 한다.
"공술 값이네요. 근데 왜 많은 지식인과 예술인이 하필 이 지역의 카페들로 모여든 거예요?"그러자 아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신다.
[아빠의 이야기] 지식과 정보의 발전소였던 소르본대학많은 지식인과 예술인이 모여든 것은 카페들이 있는 이 지역에 소르본대학(Sorbonne Université)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불문학으로 유명한 파리4대학을 위시하여 파리1대학, 파리3대학 등도 그렇고, 사르트르가 다닌 고등사범학교 등 여러 그랑제콜(Grandes Écoles)들도 이곳 좌안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와있는 이 좌안을 라탱지구(Quartier Latin)라 부르는 거야.""라탱지구?""옛날 이 지역 학생들은 수업을 죄다 라틴어로 받았거든. 그래서 커피 마시고 술 마시고 시 낭송을 하거나 논쟁을 벌일 때도 라틴어만 사용했다더군. 한문만 쓰던 조선조의 선비들 비슷하게. 소르본대학에 한번 가볼까?"다리가 아파 우버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운전기사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팡테옹(Panthéon) 앞이었다. 아까 지나온 뤽상부르 공원에서 왼쪽을 보면 옛날 광화문 중앙청의 첨탑 비슷하게 보이는데, 그게 바로 팡테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