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구급대원' 국민청원 4만 돌파... 캘리포니아였다면?

[이건의 미국소방 평론 23] 구급대원에게도 '면책특권'이 필요하다

등록 2018.07.09 09:18수정 2018.07.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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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로교통안전국'(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발생하는 구급차량 사고(충돌사고·전복사고 등)는 4500여 건이다. 이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사망자는 매년 평균 30여 명, 경미한 부상 건수도 2600여 건 정도로 많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며 출동하는 구급차는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 빠른 출동과 환자이송을 위해 과속이나 신호를 위반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응급처치를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안전벨트조차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구급차량 추돌사고나 전복사고가 발생하면 구급대원이나 환자가 구급차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으며 이는 자칫 2차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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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구급차량 추돌사고 인포그래픽. ⓒ ems.gov


이런 문제점들로부터 구급대원과 환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사고에 더 안전할 수 있는 구급차 디자인을 개발하고, 환자와 구급대원의 안전을 위한 벨트 착용, 안전출동지침 개정을 통한 안전운행 문화 정착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장은 교과서와는 다르다. 응급처치를 하다보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상황들을 적용하기 힘든 경우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와 그 피해복구로부터 구급대원들을 지키기 위한 '면책특권(Sovereign Immunity)'이 존재한다. 면책특권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한 사고와 그 피해를 구급대원 개인에게 묻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주요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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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 주 뉴 마켓(New Market) 소방서 소속의 구급차와 승용차 추돌사고. 이 사고로 4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 The Frederick New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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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 구급대원, 경찰 등 응급처치 활동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면책특권 조항. ⓒ 캘리포니아 주 보건안전규정


물론 면책특권을 악용하거나 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구급대원의 업무태만, 고의성 등을 따지게 되며 이는 종종 법정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서도 환자를 이송하던 119 구급차와 승합차가 교차로에서 추돌한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구급대원들이 구급차에서 튕겨져 나와 부상을 당했다. 그 와중에도 구급대원이 엉금엉금 기어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환자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사고로 구급차를 운전했던 해당 구급대원은 경찰조사를 받고 불구속 입건됐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의해 긴급자동차가 출동 중인 경우 신호위반이나 속도제한 단속을 받지 않지만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면책규정이 없어 그 책임은 모두 소방관들이 지게 된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현재 청와대 게시판에는 '광주 구급대원 경찰 조사 및 처벌 억제'라는 제목으로 해당 구급대원이 처벌받지 않게 해달라며 올라온 청원은 9일 현재 4만2000명을 넘어섰다. 

소방관들이 불편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고내지 말고 빨리 출동해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고가 나면? 그냥 소방관이 다 책임져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소방관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소임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소방관들이 현장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가 법과 제도로 지원해 줄때 더 나은 양질의 소방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소방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구급대원 #광주구급대원 #면책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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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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