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블랙미러3> '추락'편 스틸컷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3>의 '추락' 편 주인공은 '자신의 행복한 일상'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아래 인스타) 같은 SNS에 올린다. 주인공은 많은 이에게 좋은 평점을 받기 위해 웃는 연습도 하고, 감성적인 카페에 간다. '보여주기 위해' 사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2년 전 내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 되던 해인 2016년, 처음으로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해외 배우의 사진에 댓글을 달기 위해서였다. 주변에 인스타를 운영하는 지인들도 꽤 많았기에, 나도 이제 남들 다 하는 SNS 활동이란 걸 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 계정에 업로드된 사진을 보는 것이 퍽 즐거웠다. 얼굴 모르는 이들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내 일상을 찍어 사진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재치 있게 다는 일 또한 소소한 재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스타는 내게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다.
여행, 음식, 축제 등등... 세상에는 내가 못 가보고 못 먹어본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인스타 세계를 통해 알게 됐다. 누군가의 화려하고 멋들어진 계정을 보며 나의 계정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사진에 달린 하트(사진 호감을 표하는 버튼)와 팔로워(해당 계정을 구독하는 사람) 수에 예민해졌고, 나도 '있어 보이고 싶다'라는 욕심이 피어올랐다.
일부러 콘셉트를 연출하거나 사진을 보정하는 횟수가 늘었다. 보다 '특별하고 행복하며 즐거운' 일상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나의 하루가 정사각형 사진틀에 갇혀 잘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진 속의 완벽한 모습은 단지 삶의 일부임에도, 마치 그게 내 삶의 전체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이리저리 배치하고, 여기저기 보정하고"잠깐, 숟가락 들지 마! 음식 모양 흐트러진단 말이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사진부터 찍었다. 먹음직스럽게 담긴 음식을 정사각형 사진 프레임에 담았다. #지역, #분위기, #식사, #데이트... 검색에 쉽게 잡히기 위해 각종 해시태그를 알사탕처럼 줄줄이 달았다. 몇 번의 보정을 거쳐 완성된 '인증샷'을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사진을 올린 후에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댓글과 하트 수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대화가 사라진 테이블엔 보기 좋은 음식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내 통통한 볼살 봐. 이런 사진을 어떻게 올려?"보정하지 않은 사진은 절대 원본 그대로 인스타에 올리지 못했다. 요즘 나오는 웬만한 사진 애플리케이션에는 몸 늘리기, 눈 키우기, 화장하기 등 외모를 꾸미는 기능들이 상상 이상으로 잘 갖춰져 있다.
조금만 손봐도 단점이 감쪽같이 사라진 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쁘다', '잘 나왔어요'... 훈훈한 댓글을 보며 만족감을 얻었다. 보정 전이 진짜 내 모습인데도, 보정 후 사진이 곧 나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