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리도 교토대본노란 화살표는 지중해 입구
김선흥
위의 두 지도 중 첫번째는 일본 교토 류코쿠(龍谷) 대학 본입니다. 통상 강리도라 하면 이 지도를 가리킵니다. 두번째 지도는 1910년 교토대에서 만든 모사본이다. 두 지도에서 황색 화살표는 지중해 입구를 가리킵니다. 이제 붉은 화살표에 집중해 봅니다. 류코쿠대 본에는 '細只里土麻思'이라 적혀 있고 교토대 본에는 '細已里上麻思'이라 적혀 있습니다. 전자가 옳습니다(강리도의 다른 판본에도 細只里土麻思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土를 빼고 읽어봅니다(土는 땅이라는 뜻으로 발음과 상관없이 넣은 것 같다). 중국어로 '씨즈리마쓰'입니다. 바로 '씨질마싸(Sijilmassa)'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리적 위치도 실제와 흡사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듣도보도 못한 이곳을 태종 2년에 우리 선조들이 세계지도에 적어 놓았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곳 씨질마싸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12세기 이슬람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씨질마싸'는 모든 나라에서 여행자가 방문하는 수도다. 건물들이 웅장하고 정원과 과수원과 들로 둘러싸여 있다. 요새는 없지만 여러 형태의 궁전, 저택, 건축물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강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나일강만큼 큰 강으로 사막의 동쪽에서 흘러나온다. 주민들은 그 물을 이집트인들처럼 농업용수로 활용한다. 작물이 풍요롭다….모든 종류의 과일이 많이 난다. 특히 매우 작은 초록 데이트는 당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주민들은 또한 목화, 커민(미나리과 식물 - 필자), 양방풀 나물, 헤너(염료로 사용하는 식물 - 필자)등을 재배한다. 이들 작물을 북아프리카 지역과 그 너머로 수출한다. 건축물은 매우 아름다우나 최근의 변란으로 인해 많이 허물어졌다. 주민들은 개와 도마뱀을 먹는데 그들은 이 때문에 몸이 건장하다고 여긴다. -Bidwell, <Morocco> 137쪽(필자 번역)
우리는 또한 14세기 모로코 출신의 위대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77)의 여행기 속에서 씨질마싸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도착한 곳은 씨질마싸(Sijilmasah)시다. 대단히 아름다운 도시로서 대추야자가 많이 난다. 대추야자가 많이 난다는 면에서는 바스라(Basra, 강리도에 지명이 나온다)와 비슷하나 씨질마싸의 것이 더 좋다. 특히 이란(Iran)이라는 대추야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종이다. 나는 그곳에서 법학자 아부 무함마드 알 부쉬리의 집에다가 여장을 풀었다. 그가 바로 내가 중국 지방의 깐잔푸에서 그의 형제를 만나봤다고 한 그 사람이다. 두 형제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는 나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나는 거기서 낙타 한 마리를 구입하고 4개월분의 사료를 장만해가지고 753년 1월 1일(이슬람력,1352년 2월 18일) 아부 무함마드 얀드칸-그에게 알라의 자비를-이 향도한 대상(隊商)과 함께 길을 떠났다. 대상 중에는 씨질마싸 상인들과 기타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 <이븐 바투타 여행기 2> 389쪽(정수일 역)
세월이 흘러 16세기 초에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도성은 허물어져 있고 사람들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처럼 시간 속으로 사라진 씨질마싸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0년 전 미국 테네시 주립대학 역사학 교수 로널드 메시에(Ronald Messier)가 유적을 발굴하면서 부터였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발굴은 1402년 한국인이 그린 세계지도에서 그 지명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세계지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리적 시야가 넓을 때 그 국가 민족이나 문명은 흥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리적 시야가 좁아질 때 쇠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예외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측면에서 강리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큽니다. 세계 인식과 지리적 시야를 초광역적으로 넓힌 강리도의 탄생에 뒤이어 불과 50년 이내에 대마도가 정벌되고 육진이 개척되었으며 측우기와 한글이 창제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시야의 넓고 좁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늘 너머 모로코까지 지리적 시야를 넓혔던 강리도가 "후손들이여, 지금 그대들의 시야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분단선 아래에 갇혀 있지는 않는가?" 묻고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