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전시납북자로 헤어진 가족을 만나다

20일 단체상봉... 50명 중 다섯 가족 만남 성사

등록 2018.08.20 16:54수정 2018.08.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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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공동취재단 신나리 기자]

 제21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호텔에서 65년만에 만난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호텔에서 65년만에 만난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일 오후 3시,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이 만났다. 2박 3일 동안 예정된 단체상봉, 환영만찬, 개별상봉, 객실점심, 단체상봉, 작별상봉·공동점심 등 총 6차례의 만남 중 첫 번째 만남이다. 68년을 기다리고 나서야 맞이한 11시간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는 국군포로 한 가족과 전시납북자 네 가족도 포함돼있다. 남측의 가족이 찾았던 국군 포로 당사자와 전시납북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달영, 이영부, 최기호, 곽호환, 홍정순. 남측의 가족들이 조카와 이복동생을 만나 아버지, 남편, 형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달영(82) 할아버지 이야기] 국군포로 아버지는 못 만나지만...

이달영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어디 부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1952년도쯤 북한으로 간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나이 서른이 좀 넘었을 때다.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이가 아버지의 소식을 들려줬다. 국군포로라는 거였다.

이달영 할아버지는 하루에 두 자씩, 천자문을 가르쳐 주던 아버지를 더는 볼 수 없었다. 남쪽에서 할아버지를 키우며 살았던 어머니 역시 지난 2014년에 숨을 거뒀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68년이 흘렀다. 할아버지는 생각지 못한 이복동생 둘을 만났다. 1987년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북한에서 가족을 꾸리고 살았던 것.

"아버지가 북에서 그냥 돌아가셨다면 더 마음이 안 좋았을 거예요. 아이도 낳고 좀 살다가 가셨다니까 다행이다 싶어요."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사진을 챙겨 나왔다. 이복동생이 갖고 온 사진과 비교해 보면서 아버지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는 이복동생들에게 어떤 아버지였을까, 이복동생들도 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웠을까. 나눠야 할 이야기가 한 보따리다.

[이영부(76) 할아버지 이야기] 납북된 아버지, 형의 아들과 딸

이영부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납북됐다. 평북 용천인 고향인 할아버지는 6.25 때 아버지와 남쪽으로 왔다. 이후 아버지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통장으로 일했다. 북에서 남으로 많은 사람이 피난 오던 때다. 사람이 부족했던 북한은 남측 사람들을 납북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역시 이때 납북됐다. 1950년 9월 27일이었다.

"그때 8 만여 명이 납북되던 시기였어요. 북이 남쪽 사람들 신상을 파악해서 쓸만한 사람들을 데려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10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남편을 잃고 남겨진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생활고를 겪다 30대 후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아버지는 북한에 형이 두 명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두 형의 아들과 딸을 만났다. 난생처음 만나는 또 다른 가족이지만 할아버지는 마냥 반가웠다. 가족은 가족이었다. 할아버지는 세 명의 조카를 마주했다.

[최기호(83) 할아버지 이야기] 형은 어떻게 살았을까

최기호 할아버지의 형은 세 살 위였다. 할아버지의 큰 형(최영호)은 의용군으로 납북됐다. 그리고 2002년 마지막 숨을 거뒀다.

"어머님이 형을 특히 그리워하셨다. 끼니마다 꼭 형이 먹을 밥을 떠서 상에 올리고 '밥공기에 물이 맺히면 네 형은 살아있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뜨거운 밥에는 당연히 물방울이 맺히지만, 어머니는 그걸 형이 살아있다는 징표로 삼았다. 잘 살아있을 거라는 어머니 나름의 확신이었다.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할아버지가 형의 두 딸을 만날 수 있었다. 6남매 중 맏이였는데 순했던 형, 한자를 많이 알아 청주에서 가장 큰 한약방에서 일했던 형, 결국 그 한약방에서 일하다 북한으로 끌려갔던 형.

장난을 친다고 형에게 오줌을 누고 미끄러진 동생이 여든셋이 되어 형의 얼굴이 담긴 조카 둘을 마주했다.

[곽호환(85) 할아버지, 홍정순(95세) 할머니 이야기] 납북된 형, 끌려간 남편

곽호환 할아버지는 납북된 형의 두 아들을 만났다. 형의 나이 스물하나, 인민군 관계자와 회의한다고 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동네 사람 10여 명이 형과 함께 사라졌다. 할아버지의 형은 북한에서 1981년에 사망했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아버님이 큰아버지를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그 자녀들이라도 만나게 돼 소원 풀이하시게 됐다"라고 말했다.

홍정순 할머니는 6·25 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전쟁 직후 북한으로 끌려갔다.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번 상봉에서 오빠의 딸과 동생의 아들을 만난다.

남측은 이번 상봉 행사를 준비하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50명을 선정해 북측에 생사확인을 의뢰했다. 이 중 21명의 생사가 확인돼 다섯 가족의 상봉이 성사됐다.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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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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