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
김지현
어려서 꿨던 꿈이 있다. 세계여행이다. 초등학교 때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고 생긴 꿈이다. 가고 싶은 나라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자를 그어가며 여행 동선을 짜다 보면 상상 속에서는 이미 그 나라에 가 있었다. 어른이 되고서 그게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꿈인지 알게 됐다. 불가능하겠지만, 너무나 영롱해서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꿈도 있다. 하나는, 당·정협의를 해보고 싶다. 당·정협의는 집권여당과 정부 부처 간에 이루어지는 정책 수립 및 조정에 관한 회의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논의하기도 하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과 같이 특정 주제에 관해 해당부처 장관과 토론할 수도 있다. 야당이 견제와 비판을 기본으로 한다면, 여당은 협력을 바탕으로 나아가 주요 정책을 주도할 수도 있다. 이는 매우 큰 차이다.
두 번째, 상임위원장을 맡은 의원실에서 일해보고 싶다. 국회에는 17개 상임위원회가 있고, 상임위원장은 여야 간 의석수를 기준으로 배분하며 통상 재선 이상의 의원이 맡는다.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하고, 전체회의를 진행하고, 간사들과 협의해 의사일정을 정하고, 위원회 사무를 관장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기에 상임위원장의 권한도 강력하다.
세 번째, 법안심사소위원회(아래 법안소위)에 들어가고 싶다. 17대부터 현재 20대 국회까지 무려 4대를 일했는데 한 번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상임위에서 따라서 비교섭단체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일했던 보건복지위원회는 유독 넣어주지 않았다. 신청을 안했느냐? 2년에 한 번 원 구성 시기마다 매번 했다. 비교섭단체를 일방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당 차원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거대 양당이 이럴 때는 의기투합이 잘 된다.
법안소위가 대체 뭔데?왜 다른 정당들은 진보정당이 법안소위에 들어오는 것을 꺼릴까? 법안소위가 대체 뭔데?
국회의 법률안 심사 절차와 과정을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법안을 발의하면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하고, 입법 취지와 주요 내용을 국회 홈페이지 등에 게재해 입법예고를 한다. 이후 상임위 전체 회의가 열릴 때 안건으로 상정한다. 대표발의 의원이 제안 설명을 하고, 전문위원이 검토 보고를 한다. 그 뒤 대체토론을 한다. 대체토론은 의결하지 않는 토론을 말한다. 의견을 개진하고, 질문도 할 수 있다. 토론이 끝나면 법안소위로 회부한다. 실질적 심사는 이제부터다.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법안소위 위원을 찾으면 된다.
저지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법안소위 위원을 찾으면 된다.
내용을 반영하고 싶다면? 당연히, 법안소위 위원을 찾으면 된다.
법안소위는 통상 10명 안팎의 인원으로 구성된다. 소수의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의하기에 한 명이라도 강력히 반대하는 의원이 있다면 그 법안은 통과가 쉽지 않다(물론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가 반대해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른바 '쟁점법안'이라고 불리는 법안이나 정부가 비협조적인 법안은 논의하지 않고 그냥 둔다. 이를 '계류 중'이라고 하는데, 통과되지 않은 모든 법안은 상임위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그러다 임기가 끝나는 날 한꺼번에 '폐기'된다.
같은 방식으로, 문제가 되는 법안의 일방적인 추진을 막는 일도 법안소위에서 할 수 있다. 통과를 무조건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반영해 조정할 수도 있다. 법안소위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은 '법안을 중심으로 한 가장 중요한 협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의견 표명'이 가능하다지만... 결국은 법안소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