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성폭력 근절 포스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과 대상을 받은 작품들. 왼쪽 포스터는 '승진을 핑계로, 업무를 핑계로 직위를 남용하지는 않으셨나요?'라고 묻고 있고, 오른쪽 포스터는 '성폭력, 원인은 야한 옷이 아니라 가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희정 사건의 재판부는 위력의 합리적 해석을 제시하지 못했고, 재판중에는 피해자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느가를 따지기도 했다.
법무부
상사가 위력을 행사한다는 건 무엇일까? 안희정 사건 재판부는 피고인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어야 위력의 행사를 인정했을까? '내가 주지사로서 명하노니...'라고 말했어야 할까? 안희정은 늘 업무 지시 형태로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맥주,' '모기향', '내 담배 좀.' 조금이라도 답변이 늦어지면 "어허. 문자 안 보네"라는 꾸지람이 날아왔다. 피해자가 위력에 의한 성추행과 간음을 당했다고 진술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새벽에 맥주 심부름을 시킨 안희정은 숙소에 온 그를 안으며 '외로우니 안아달라'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당황한 피해자는 당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후 간음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이때조차 위력이 행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피고인이 행한 신체 접촉은 맥주를 들고 있는 피해자를 포옹한 행위뿐이고, 언어적으로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재판부가 피고인의 일방적인 성적 행동에 '뿐'이라는 조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안으라고 지시한 것 '뿐'이고, 상대 의사를 무시하고 끌어안은 것 '뿐'인데, 겨우 이런 걸 가지고 권력 남용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된다.
재판부는 법적 미비로 인해 피고인의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미비된 것은 자신들의 성인지감수성으로 보인다. 재판부의 젠더의식 부재는 판결문 곳곳에서 드러난다. 피고인의 상황은 적극 유리하게 해석하는 반면, 피해자의 상황은 가능한 한 불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가 '성관계' 의미라는 재판부
피고인은 "자니"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피해자가 아니라고 답하자 "올래?"라고 물었다. 피해자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주무시다 깼느냐'라고 말했고, 그는 "ㅇ"라는 자음 하나로 답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엥?"이라고 반문하는데, 표현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일 터이다. 이어 피고인은 ".."라는 기호를 보낸 뒤, 상대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재빨리 "담배"라고 덧붙인다.
피해자가 "네. 담배"라고 답했고, 피고인은 다시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피해자는 "다른 건요"라는 말로, 담배 이외에 필요한 것은 없냐고 물었고, 피고인은 "없다"고 답했다. 피해자는 담배를 챙겨 피고인의 숙소로 갔고, 이후 간음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증언에서 ".."라는 상사의 문자가 불쾌함이나 침묵을 표현한 것으로 느껴졌으며, 두려움과 압박감을 가지고 피고인의 방으로 갔노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증언과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보낸 '..'를 성행위를 원한다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담배를 달라는 지시를 하기 위해 '담배'와 같은 지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반복해서 '..'라는 문자를 보낸 것은 성관계를 바란다는 뜻을 전한 것이며, 피해자가 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성관계'를 암시했을 수 있는 문자를 받고도 왜 상사의 숙소를 갔느냐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도 놀랍지만, 해석도 그에 못지 않게 놀랍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 보기에, 재판부는 문자메시지 교환이 소통행위라는 기본적인 전제조차 무시하고 있다.
둘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피해자가 '..'를 '성관계'의 의미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피해자는 오직 '담배' 같은 명시적 메시지에만 정확한 대답을 하고,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담배 이외에 필요한 것은 없느냐'고 묻기까지 했고, 피고인 또한 이 질문에 "없다"고 명확히 답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피해자가 느낀 바를 무시한 채, 점 두 개에서 '성관계'를 읽어내고 이것을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적용했다.
시도때도 없이 담배 심부름 시키는 상사가 '권위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