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노지현
한국에서 삶은 늘 이런 식이다.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여기서 '정'이라고 말하는 한국 고유의 정서적 공감대가 태어나기도 했지만, 사람에 치여 살면서 나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과 나보다 조금 더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숱하게 짓밟힌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흔히 말하는 갑질이 그렇다. 돈만 있으면 한국 사회는 어떤 나라보다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돈이 없으면 한국 사회는 정말 지옥 같은 나라다. 영화 <신과 함께>의 차사도 "한국은 돈이 없으면 지옥보다 더 지옥이거든"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대사였다.
지금처럼 우리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면, 정치인들은 "그런 것도 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야지.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의 싫어서>의 주인공이 혼자 읊조린 '그런 소리 하는 인간들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않겠지'라는 말이 딱 알맞다.
매번 선거철이 되어야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올려주겠다고 말하고, 실천도 하지 않을 복지공약을 내걸고, 평소에는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며 뻣뻣한 고개를 숙일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라고 애원하며 큰절까지 올린다. 사람을 미끼로 내걸어 지키지도 않을 사람을 말하고 있다.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면 주인공이 호주에서 보내는 삶과 한국에서 보낸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하나하나 한숨을 내쉬며 읽게 된다. 굳이 주인공이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보내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지적하는 하나하나가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이 무조건 호주를 찬양하고 한국에 날 선 비판을 가하는 건 아니다. 호주의 문제점도 분명히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호주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책에서는 이런 장면도 만날 수 있었다.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빛나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라고,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라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본문 171)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게 당연시 여겨지는 나라와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의 차이는 바로 이렇게 국가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이 싫어서>의 이 대목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어떤 사람은 "사회주의다! 그렇게 싫으면 북으로 가!"라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의 한계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배척하는 특성.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성추행 문제를 고발하면 내부고발자가 오히려 더 많은 피해를 입는 시스템 구조. 이렇게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놓인 여러 시스템이 항상 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을 위해 만들어져 있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면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있더라도 '다 그렇다. 이렇게 안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애써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더 나은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내 삶을 살기 위해 호주를 선택한 주인공을 응원했다.
지난 여름에 사촌 여동생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다 기간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곧바로 다시 호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선택지를 버린 사촌 여동생도 어쩌면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처럼 호주에서 진짜 자유로운 삶을 발견한 건지도 모른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민음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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