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충남 서산에서 벌어진 정의당 선거유세 현장.
신영근
사표를 만들지 않기 위한 분산투자도 등장했다. 선거제도가 후보에 1표, 당에 1표 찍는 1인 2표제로 바뀌었을 때부터다. 이미 말했었지만, 당시 선거제도의 변경은 노회찬 대표의 작품이었다.
이때부터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지역 후보는 민주당에 정당투표는 진보정당에 찍는 이른바 '교차투표'를 하기 시작했다. 1석2조였다. 이렇게 하면 2표 모두 사표가 아닐 뿐만 아니라 될 성 부른 떡잎을 키우는 데 양분의 반을 나눠줄 수 있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후보 한 명이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반가운 얼굴을 한 유권자 한 명이 말을 걸었다고 한다.
"제가 후보는 열린우리당 찍어도, 당은 꼭 민주노동당 찍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여기에 민주노동당 후보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진보정당이 발전을 안 하는 겁니다. 당도 우리 찍을 필요 없어요."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에 대한 열망이 과하게 넘치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실, 교차 투표는 나름대로 정치적 의미가 있는 행위였다. 영남권에서는 한나라당에 실망했지만 민주당으로 가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고, 호남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이때의 교차투표는 단순히 내 표를 사표로 만들지 않겠다는 욕심이라기보다는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 새로운 정당을 키워야 한다는 기대 등이 실용적 수준에서 발휘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교차 투표를 통해 진보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적극적 진보정당 지지층은 아니었다. 결정적일 때는 원래 지지정당으로 돌아갔다. 대선, 광역 및 기초단체장,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등 1등만 뽑는 선거에서 진보정당에게 올 표는 없다.
결국 될 사람 찍는 것도, 안 될 줄 알면서 찍는 것도, 교차투표도 모두 전략 투표다.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유권자들은 계속해서 전략투표를 강요받을 것이다.
후보가 자기 공약을 잘 모른다
사실 전략투표를 강요하는 선거제도는 나쁜 선거 제도다. 유권자가 선거 때마다 복잡한 계산을 하도록 만든다. 전략을 짜고 계산을 하는 것은 정당이 해야 할 일이다. 유권자가 판단해야 하는 전략이란, 자신의 삶과 각 정당의 정책 및 노선이 잘 들어맞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은 제도가 그렇지 않으니, 유권자는 후보자들의 정책, 그러니까 후보자가 속한 정당의 정책을 잘 모른다. 그뿐인가. 후보가 자기 공약을 잘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2016년 총선, 그 유명한 팟캐스트 '노유진(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정치까페'가 전북 익산에 왔다. 바로 옆 동네가 내 출마 지역이었으니, 짬을 내 구경을 갔다. 방송 막판에 유시민 작가가 날 불러냈다.
"심상정의 논리, 노회찬의 위트, 얼굴은... 유시민?"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 구역의 얼굴은 진중권이라고 말했다. 그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유권자 여러분들께서 정말로 정책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후보들도 그렇고, 유권자들도 그렇고, 정책을 영화 끝나면 맨 마지막에 글씨 줄줄 올라가는 거 있잖아요. 그 엔딩 크레딧으로 취급해요. 아무도 안 봐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후보자들 수준도 너무 떨어집니다.
제가 접한 후보들 가운데 한 명에게 (토론 할 때) 본인이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정책을 물어봤어요. 그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설명해달라 그랬더니, 모르세요. 정말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는데요, 그때 그분 표정이 중국집 사장이 짜장면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결선투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첫 회의 시작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유성호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어떤 경우에도 사표가 발생하지 않게 되면, 그 다음에 유권자는 전략 투표 고민 따위를 내려놓고 정책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는 모든 국민이 소신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 자기 공약도 모르는 후보들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어차피 한 명밖에 뽑지 않는 대통령 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등에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된다. 월드컵처럼 1위를 토너먼트로 뽑자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약팀이라도 다른 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중도 포기를 요구받지 않을 것이고, 충분히 팀 컬러를 살려 경기할 수 있다. 경기스타일에 매료된 관중이 많아져 힘이 모이면 다음엔 우승도 노려볼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최소치다. 거듭 강조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의사 분포를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하는 제도다. 성능 좋은 복사기쯤으로 보면 된다.
연동형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로, 국민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왜곡했던 70년 한국정치의 사기행각을 끝내야 한다.
정치개혁특위가 우여곡절 끝에 시작됐다. '사표 제로'를 위해 노력해 달라. 그거면 된다.
노회찬재단(가칭) 설립 추진 |
노회찬재단(가칭) 설립 실행위원회는 지난 10월 8일부터 준비위원 구성 및 시민추진위원 모집을 시작했다. 시민추진위원 참여는 노회찬재단 준비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hcroh.org)에서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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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 대변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2 진행자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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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수십년간 '선거 먹튀사기'를 당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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