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 없는 고양이의 암을 치료하는 이유

[책이 나왔습니다]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를 펴내기까지

등록 2018.10.28 11:38수정 2018.10.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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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이별의 순간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만남의 순간에 헤어짐은 막연하고, 언제까지고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고양이는 생명이기에 언젠가 늙고 병들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이 온다. 그리고 나에게 그 이별의 순간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갑작스럽고 빠르게 닥쳐왔다. 내 체감으로는 10년, 어쩌면 20년 정도 이르게 말이다. 

고양이가 암에 걸렸다


나의 첫 번째 고양이 제이는 우연히 나에게 왔다. 입 주변에 상처가 난 채로 혼자 고군분투하던 새끼 길고양이가 내 친한 동생을 따라왔고, 고양이를 키울 수 없었던 동생의 부탁으로 결국 내가 키우게 되었다. 마냥 발랄하고 건강한 줄로만 알았던, 2kg도 채 나가지 않았던 그 작은 고양이가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발견한 건 바로 그 해 겨울밤이었다. 나와 살게 된 지 6개월 차였다. 

제이는 자그마한 산소 입원실에 들어가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왜 자기를 이런 곳에 혼자 두었냐는 듯 나를 올려다보며 야옹야옹 울었다. 오로지 나만 믿고 있을 제이를 입원시키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말도 안 되게 무거웠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병원을 옮겨가며 수많은 검사를 했는데도 제이의 엑스레이에 찍혀 나오는 하얀색 덩어리가 무엇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2차 동물병원 원장님도 '처음 보는 엑스레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CT 촬영과 여러 검사 결과를 토대로, 최종적으로 제이는 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치료 방법에 대한 고민 끝에 일단은 항암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항암 치료는 총 25주 동안 매주 진행해야 하는데, 한 회마다 치료비는 약 30만 원이 넘었다. 이미 검사비로 200여만 원을 썼고, 항암 외에 부수적인 증상에 따른 대증 치료도 해야 했다.

그래도 나을 수 있다는 확실한 희망이 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항암 치료가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으며, 만약 25주 치료가 끝난다고 해도 기대 수명은 1~2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고양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암은 결국 반드시 재발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병원비로 얼마나 쓸 수 있을까
 
 길고양이였던 제이는 우리집에 온 뒤 순식간에 적응해 발라당 누워 있곤 했다
길고양이였던 제이는 우리집에 온 뒤 순식간에 적응해 발라당 누워 있곤 했다박은지
   
예전에 본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양이 병원비로 흔쾌히 쓸 수 있는 돈의 상한선은 약 100만 원 정도라고 답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100만 원은 큰돈이지만 동물병원에서 그 정도 지출은 우습다는 걸 반려인이라면 대개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결혼한 지 딱 3개월이 되던 차였다. 그나마 있는 돈은 집 보증금으로 다 끌어넣고, 신혼집의 새로운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갖추고 난 후였다. 수중에 가장 돈이 없는 시기였다는 말이다.


남편과 제이의 치료에 대하여 의논했다. 지금은 남편이 먼저 둘째, 셋째를 입양하자고 할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나와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커녕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고양이를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돈이 엄청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으로 간절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윤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며칠 내내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가끔은 입씨름을 했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밤을 보냈다. 선뜻 대답해주지 못하는 남편의 망설임에 내 죄책감을 털어내듯 나는 더 날카롭게 그를 질책했다. 그가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고, 또 제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현실적인 수치를 꺼낸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자꾸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 어떨 땐 미안해서 더 많이 울었다. - 99페이지
 
 암 치료로 수염이 다 빠진 제이
암 치료로 수염이 다 빠진 제이 박은지
 
나 역시 머릿속이 엉망으로 복잡했다. 어쩌면 제이가 그냥 길고양이로 살았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내 욕심이 제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이 치료를 강요하는 게 남편에게 너무 이기적인 행동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결국 제이를 치료하기로 결정했다. 제이를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는 결국 이해해주었다. 제이가 나이 많은 고양이였다면, 혹은 오랜 투병으로 약해진 고양이였다면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 이별을 준비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제이는 아직 너무 어리고, 작고, 나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단 1년이라도, 아니 6개월이라도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제이를 더 사랑해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다소 연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치료가 중요했다.

매주 병원에서 6시간 이상씩 주사를 맞고 와야 하는 일정, 사람에게도 힘들지만 고양이에게는 더욱 힘든 치료 과정이었다. 이게 잘하는 일일까 하는 고통스러운 의문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정말 제이를 위한 일인지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대답해주지 않는 고양이와 살아가면서, 보호자는 매 순간 최선이라고 믿어지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표지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표지 박은지
  
그럼에도 고양이를 치료하는 이유 

다행히 항암 치료는 효과가 있었다. 수염과 등 털이 다 빠지기도 하고, 식욕이 없어 사흘씩 밥을 거부하기도 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제이는 활기를 많이 되찾았다. 

제이를 치료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제이는 이제 괜찮아?"라고 많이 물었다. 제이의 건강은 확신할 수 없었다. 동물병원의 진단에 따르면 완치가 없는 길이었고, '이제 괜찮아'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묘연을 맺는 순간만큼이나 최선을 다하는 이별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에 내가 제이를 위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로했다. 
 
 건강해진 제이
건강해진 제이박은지
  
한 생명과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마음 졸여야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짐스럽고, 고민되고, 때로는 좀 더 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지금 서로와 함께하고 있다. 힘들거나 괴로운 순간을 그 작은 고양이 홀로 겪어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아도 된다. - 235페이지

물론 이별을 맞닥뜨리는 것은 고통스럽다. 이 작고 약한 동물을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온몸을 맡기고 고롱거리며 눈을 감는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속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행복과 따스함을 알려준 이 만남에 마음 깊이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충분히 괜찮아졌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반려묘는 제이 한 마리였는데 지금은 어느새 세 마리가 되었다. 앞으로 내게는 세 마리만큼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략) 가을방학의 노래가사처럼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란 걸' 알지만 그 아픔까지도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에 매겨지는 값이라 생각하고 싶다. - 239페이지

제이는 치료 후 실제로 한 차례 재발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기적처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은 언젠가 우리가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커다란 소나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소나무를 제이의 캣타워로 쓰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현실성은 둘째로 치고, 우리가 그리는 미래에는 이제 당연하게 고양이들이 있다. 
 
 보호소에서 입양한 셋째 고양이 달이
보호소에서 입양한 셋째 고양이 달이 박은지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에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배우자와의 갈등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아픈 고양이를 치료하고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가장 솔직한 기록을 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늙고 아픈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집사님들에게 제이의 기적을 나누며 응원을 보내고 싶다.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 하루하루가 더 소중한 시한부 고양이 집사 일기

박은지 지음,
미래의창, 2018


#고양이 #신간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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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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