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연 시민기자
송주연
그는 원래 기자였다.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스포츠·방송 분야 취재를 하다가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새롭게 관심이 생겼다.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고, 합격했다. 당시 나이 서른 살. 기자직을 그만두고 심리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에도 도전했으며, 공인 자격증을 따 상담사 일도 병행했다.
지난해 여름, 남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잠시 거처를 옮기게 된 그는 짐을 싸다가 옛날에 썼던 기사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학생, 상담사, 주부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늘 바빴음에도 어딘가 공허하고 불안했는데, 예전에 썼던 기사들을 보며 그 이유를 깨달았어요. 글쓰기를 놓아 버렸기 때문이었어요.
전 취재기자가 아닌 상담자·심리학도의 길을 택했을 뿐이지, 글쓰기 자체를 싫어하진 않았거든요. 오히려 기자라는 직업을 꿈꿀 정도로 글 쓰는 걸 오랜 시간 좋아해왔죠.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어요. 20대에는 기자, 30대에는 상담자로 살았다면, 40대에 이른 지금부터는 이 둘을 통합해 나만의 색을 만들어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그는 10년 만에 '송주연 시민기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독자 앞에 섰다. 이주 초반에는 캐나다에서 보고 느낀 삶을 기록하다가 적응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한때 취재했던 방송·연예 분야에 심리학을 접목해 자신만의 리뷰를 쓰기도 했다.
무엇보다 독자 반응이 뜨거웠던 건 '나의 독박돌봄노동 탈출기' 연재였다. 똑같이 공부하고 일하다가 결혼했는데 밥 차리는 일은 아내의 몫이 되는 현실. 함께 애를 낳았는데 육아의 책임은 오롯이 엄마에게 전가되는 구조. 그는 여성을 옭아매는 가부장적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저도 모르게 억울함, 부당함 같은 감정들이 쌓이더라고요. 이를 직시하고 해소하지 않는다면 결혼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특히 캐나다에 오기 직전의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거든요. 이곳에 와서 우연히 페미니즘 의식향상그룹에 참여하게 됐고, 가부장적 문화가 어떻게 나를 옭아매고 남편을 '아들'로 만들어왔는지, 나의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됐죠."
그는 자신과 가부장 문화의 관계를 돌아보고, 가정 안에서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을 글로 기록한 게 '나의 독박돌봄노동 탈출기' 연재다(관련기사 :
설거지 하는 남편, 눈물 훔친 시어머니... 올 것이 왔다).
아내와 엄마로서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송주연 시민기자에게 이메일로 보다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어머니께 글 써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 '나의 독박돌봄노동 탈출기'를 기사로 연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한국인 이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자기성장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답답하고 억울하고 부당한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 건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참고 살아가는 여성분들이 많더라고요. 예전의 저처럼요. 캐나다는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어서 한국보다 가부장적 문화가 훨씬 약한데도, 이민 오신 분들, 특히 남편이 한국분인 분들은 가부장문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죠.
총 8차례에 걸쳐 16시간 동안 그분들과 이야기했는데, 이런 감정들을 함께 나누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더라고요. 문득 '집단에서 소통했던 것들을 글로 정리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이러한 이야기를 더 많은 여성들과 공유해 함께 변화를 도모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경험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대부분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라 더 공감 갈 수 있겠다 싶었고요."
- 개인과 가족 간의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사실 연재를 시작하기까지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남편의 반응이 영 시원찮더라고요. 초반에는 우리 집에서 일어난 변화가 낯설어서 갈등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한두 달 지나고 나니 새로운 패턴에 서로 익숙해지면서 훨씬 편안해졌어요. 그때 남편에게 다시 이야기해봤죠. 남편도 확신이 들었는지 흔쾌히 우리 이야기를 글로 나누어보자고 하더라고요.
기사를 쓰면서 남편 반응을 살피긴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댓글에 '악플'이 많았는데, 보면서 같이 분개도 해줬어요. 그래서 연재를 시작한 후에는 부담되거나 그러지는 않았답니다. 연재가 끝난 뒤에 추가로 시어머니 관련 글을 썼는데요. 그 글 역시 시어머니께 '우리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사전에 여쭤봤어요. 글을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싶다고 여쭤봤을 때는 '좋다'고 해주셨어요."
- 연재를 하는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겐 일종의 '자가 상담'이었어요. 결혼 생활을 처음부터 되짚어보면서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힘들었던 이유를 보다 분명히 알게 됐죠.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읽어보면, 그것들을 좀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돼요. 연재가 제겐 그런 계기가 됐어요. 저의 분노를 글로 표현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전통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이 을 때마다 생겨나는 죄책감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났어요.
남편 역시 기사를 읽으면서 제가 어떤 부분에서 부당함을 느껴왔는지, 제게 평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말로 다 털어놓자면 감정이 먼저 올라와 다투게 되곤 하는데, 글을 사이에 두고 소통하니 큰 갈등 없이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도 연재를 읽었어요. 다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웃음). 그래도 '엄마만 집안일을 다 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키가 조금 더 자라서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대요."
- 요즘 엄마들의 에세이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차별화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자기만의 관점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관점을 찾기 위해선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봐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살 거든요. 저 역시 집단 상담을 진행하면서 저만의 가치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 됐죠. 저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요.
이걸 알고 제 일상을 돌아보니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분노를 느낀 순간의 대부분은 불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편견으로 대하는 장면을 목격할 때더라고요. '나의 독박돌봄노동 탈출기' 연재도 평등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일상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알 수 있어요. 이 관점을 가지고 글을 쓰다 보면 본인만의 색이 묻어나는 에세이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글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