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을 버려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 책표지
살림
'장난감은 놀이의 매개체로 존재할 뿐, 그것이 자체적인 의미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곽노의 교수는 장난감을 놀이 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장난감 자체에 몰입하는 행동을 '장난감 중독'이라 정의했다.'
- <장난감을 버려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 중
아이들은 본래 혼자 놀지 않는다. 지루한 시간을 견딜 완벽한 장난감들이 눈 앞에 차려졌을 뿐이다. 장난감이 많을수록, 장난감의 기능이 화려하고 다양할수록 아이는 혼자 잘 놀았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 잘 노는 '순한' 아이로 만들어져 갔다. 그러나 장난감에 의존해서 혼자 노는 거라면 그건 순한 아이가 아닐 수 있다. 장난감 없이 놀 수 없다면, '장난감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장난감들이 정교하고 많은 기능을 발휘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장난감을 감상하는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갖가지 기능을 가진 장난감이 아이들의 마음을 유혹하지만 이 유혹은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유욕이나 감상을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 임재택 교수
키즈카페를 떠올렸다. 여기에선 50평 정도의 공간에 또래 아이들 열댓 명이 모여 논다. 그렇지만 같이 장난감으로 노는 경우는 드물다. 끝도 없이 펼쳐진 수 많은 장난감들을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장난감 한두 개를 갖고 노는 게 전부다. 지겨워지면 또 다른 장난감으로 놀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 하는 순간은 남이 놀던 장난감을 뺏거나, 갖고 노는 걸 뺏기지 않으려 할 때가 전부다.
키즈카페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 놀지만, '함께' 어울려 놀지 않는다. 놀이터를 생각하면, 키즈카페의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논다. 생판 모르던 아이라도, 또래든 나이가 더 많든 개의치 않고 술래잡기를 하거나, 흙을 판다. 몸으로 부딪쳐 노는 야외를 생각하면, 장난감은 재밌는 자극을 줄 뿐, '건전한 놀이' 그 자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충격적인 것은 이 조사에서 '혼자놀기'를 하지 않는 아이는 조사 대상 103명의 아이 중 단 1명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어린이집 만4세~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조사
키즈카페만 그런게 아니었다. <장난감을 버려라> 팀이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아이들의 놀이 형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혼자놀기를 하지 않는 아이는 103명 중 단 1명 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어울려 놀기'보다, '각자 장난감으로 놀기'에 익숙해졌다.
이번에는 유치원에서 의도적으로 장난감을 없앴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넓으니 더 좋다" 외치며 교실을 뛰었다. 평소 잘 나가지 않던 유치원 정원에서 개미를 관찰하기도 했다.
선생님들께서도 장난감 없는 자리를 대신해 뒷산으로 산책을 데리고 가셨다. 아이들은 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와 폐타이어를 교실로 갖고와 멋진 터널을 만들었다. 장난감을 대신해 친구와 놀고, 선생님과 산책했으며, 버려진 물건들로 새로운 놀잇감을 만들었다.
이미 유럽에서는 어린이집, 유치원에 장난감을 없애는 중이다. 독일 페스탈로치 프뢰벨 하우스에는 장난감이 없다. 대신 아이들은 빈 공간에 종이박스를 모아 성을 쌓거나, 천을 걸쳐 탐험 기지로 만든다. 심지어 손축구 게임도 목공을 통해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니, 장난감 없어도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더 잘 놀았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는 '숲 유치원'이 활성화되어 있다. 말 그대로 '숲' 유치원이다.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숲에서 논다. 대신 날씨에 맞게 옷을 잘 갖춰 입는다. 아이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물론 부모도 잘 다쳐본 아이가 다음에 다치지 않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