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의장, 낸시 펠로시에게 '만절필동' 친필 휘호 선물미국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2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가 만 번을 꺾여 흘러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이 적힌 친필 휘호를 선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의장은 최근 '마누라 농담'뿐 아니라 본인이 자주 쓰는 또다른 말로 인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바로 '萬折必東'(만절필동)입니다.
지난 2월 12일 5박 8일간의 미국 공식 방문 기간 때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에게 '만절필동'이라고 쓴 족자를 선물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한글로 쓰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 의미가 더 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말 자체는 '황하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으로 '결국은 본뜻대로 됨을 이르는 말'이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는 다른 뜻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절필동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파병해서 나라의 위기를 구해 준 명나라의 고마움을 표현한 말로도 쓰면서부터 한국에서는 명에 대한 의리와 충성을 나타내는 사대의 의미가 섞이게 되었다.
얼마 전 문희상 국회의장이 미국 방문 때,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에게 전한 휘호가 만절필동이다. 북한 핵 문제가 반드시 해결된다는 의미였을 텐데, 선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민족의 정서를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리라." -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매일신문> 2019.2.25
평소 서예가 취미라고 알려진 문희상 국회의장은 만절필동이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이 말을 직접 붓글씨로 써 '2018년 나눔장터' 기증품으로 내기도 했고, 여러 자리에서 이 표현을 꺼낼만큼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는 말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마누라 농담'도 그렇고 '만절필동 논란'도 그렇고 문 의장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억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장난'으로 몰아가기에는 결코 가벼운 의제 아니다"
"말의 힘이란 참 대단합니다. 대단하기 때문에 잘 못쓰게 되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잘 쓰게 되면 재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그 말의 힘으로 사는 곳이 정치권입니다.
정치력이란 말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전하고 설득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략)... 연정 제안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를 떠나 '말장난'으로 몰아가기에는 결코 가벼운 의제가 아닙니다." - 2005년 8월 22일 당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
문희상 의장은 이미 14년 전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大聯政)' 제안에 대해 야당이 연정(戀情)에 빗대 비판하자 "연정을 자꾸 연정으로 엮어 비아냥거리는 모습들은 썩 좋게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한 것이죠.
문 의장의 이번 논란이 더욱 아쉬운 이유입니다.
21세기 한국에는 여전히 성차별과 성폭력이 존재하고, 오늘도 이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존재합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더더군다나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이라면 그런 상황을 한 번쯤은 더 고려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상황 역시 그저 농담을 주고 받을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