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할미꽃 석회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동강할미꽃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무리한 욕심을 부려 묵은 잎을 모두 떼버리고, 주변의 다른 풀까지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있는 그대로 촬영해도 얼마든지 멋진 작품인데….
정덕수
이제까지 동강할미꽃을 몰랐던 이라도 사진을 보았으니 봄철 산소에 핀 할미꽃과는 분명히 구조적 형태나 색상 등이 다르다는 걸 공감하게 되었겠다. 하지만 당시엔 어떤 도감에도 이 꽃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오지 중의 오지인, 더구나 탄광촌인 이곳을 식물학자들이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겠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는 말이 있다. 꼬불꼬불 사려놓은 것 같은 양의 창자를 이르는 말로, 정선과 영월 일대 길(路)이 구절양장 그대로였던 시절이 있다. 걷는 맛이 남 다른 곳이지만, 그만큼 속살 쉬 드러내지 않는 지리적 특성으로 외지인의 발길이 적었다.
'정선아라리'라는 특정 지역 이름을 오롯이 살린 우리 소리가 있다. 정선과 영월, 평창을 잇고, 백두대간을 경계로 태백과 울진, 삼척, 동해, 강릉 등으로 이어지는 준령과 뼝대(깎아지른 듯 높이 솟구친 절벽을 이르는 강원도의 방언) 아득한 지형에 가두어진 고장이 정선이다. 그런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야 했던 민초들의 애환을 담은 가락이다.
난 그렇게 접근성도 불편했던 정선군을 사북부터 고한을 거쳐 정선읍까지, 구절리에서 여량을 지나 정선읍까지, 매년 물길이 있는 곳이면 찾아갔다. 색도, 피는 자리도 특이한 할미꽃을 제대로 보려고 이듬해 가수리로 가는 뼝대를 개꽃이 피기도 전인 4월 초 찾았다. 하지만 턱도 없이 늦어 이미 대부분 꽃은 진 뒤였다. 겨우 몇 송이 늦게 핀 할미꽃을 만나는 걸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인연이 된 동강할미꽃을 올해도 만날 약속을 친구와 미리 해두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동강할미꽃이 지금 한창일 텐데 시간이 어때?" 친구에게 말하자, "아직 잘 모르지만 솔직히 요즘 바빠서 정확하게 약속은 못해, 하지만 주중에 어떻게든 시간이 되면 연락을 다시 할게"라 대답했다.

▲동강할미꽃 먼 풍경까지 끌어와 화면을 채워도 좋고, 동강할미꽃만 촬영해도 좋다. 다만 이렇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정덕수

▲동강할미꽃 석회암 바위는 배경인 동시에 동강할미꽃의 존재 자체다. 때 맞춰 싹을 올린 무릇이 전혀 다른 느낌의 동강할미꽃이 되도록 만들었다.
정덕수
아침 9시 반 조금 넘었는데 친구가 전화를 해 거두절미 "지금 가자"고 한다. "지금 글 하나 올리는 중인데 30분 뒤에 출발하면 좋겠어." 그리 대답하고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 하고 나섰다. 오로지 동강할미꽃(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et T.C.Lee) 하나만을 만나려는 주중행보다.
동강할미꽃을 촬영하러 나선 길은 예전과 달리 길이 많이 좋아졌다. 비포장이던 신작로는 포장이 되는가 싶었는데, 최근엔 터널이 뚫리고 새로운 교량이 놓이는 등 고속도로 못지않게 좋아졌다.
그런데 출발부터 정선까지는 제대로 갔는데,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전혀 다른 고갯길로 올라가고 말았다. 만지산 자락에 집을 두고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몇 년째 생활하며 사진 촬영을 하시는 조문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만났던 탓이다. '귤암리'라 지명을 기억해냈고, 거기다 정영신 작가님과 통화까지 해 귤암리란 지명을 거듭 확인한 뒤 친구 전화기로 강원도 사투리 유창한 안내를 받게 된 탓이다.
가수리로 가는 길인 건 뚜렷하게 기억하면서 귤암리는 왜 전혀 다른 마을로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평창 미탄으로 빠지는 다릿목 솔치삼거리에서야 이정표에 귤암리가 먼저고 가수리가 다음이란 걸 확인했다.
동강댐건설을 막아낸 장한 꽃을 올해도 벌써부터 많은 이들이 찾았다. 사다리까지 가져와 촬영하던 풍경은 이젠 사라졌고, 몰래 캐가는 걸 감시하던 무인카메라도 치웠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으며 오히려 감시나 통제보다 사람의 눈이 더 두렵게 됐다.
▲동강할미꽃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동강할미꽃이 곱다. 볕이 좋은 날 솜털 보송보송한 동강할미꽃이 어미가 물고 올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 새의 주둥이 같다.
정덕수
▲동강할미꽃 봄의 신부가 손에 든 꽃다발이라도 좋겠다. 자연 그대로의 동강할미꽃은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정덕수
▲동강할미꽃 한 해 전 먼저 봄을 만났던 잎은 포근하게 막 꽃을 피운 동강할미꽃을 감싸준다. 대를 이어 꽃이 지고 자란 잎은 내년에 다시 그 역할을 해낼 것이다.
정덕수
친구와 두 시간 뼝대를 기웃거리며 휘돌았다. 올해 또 어떤 인연으로 정선을 다시 찾을지 모르지만, 조만간 개꽃을 만나러 친구와 나서기 전까진 한동안 정선에 대해선 잊은 듯 살아갈 충분한 양식은 채웠다. 하기야 개꽃으로 부르던 꽃이 수달래도 물철쭉도 아니란 걸 안다. 개꽃이 산철쭉으로 양양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만날 수 있다.
5월 초 정선을 찾던 이유였던 어머니 산소도 오래전 형제들과 상의 끝에 파묘를 해 화장 한 뒤 아버님 모신 곳에 모셨다. 산철쭉도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된 이젠 5월에 정선을 다시 찾을 이유는 딱히 없다. 다만 살다 불현듯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나서게 될지는 장담 못한다. 그게 인생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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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가지위 나풀거리는 눈송이 / 가지를 부러뜨리네. //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 저 눈송이인 줄 아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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