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엄청나게 많은 호수를 거느린 도시였지만 재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두 매립해버렸다. 원형이 남아 있는 것은 수성못(사진)이 유일하고, 30%쯤 남은 성당못도 희귀한 잔존 사례에 들 정도이다.
정만진
대불지의 흔적을 말해주는 이름들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1370-1번지(대학로 80)의 경북대학교 북문에서 500m가량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복현오거리가 나온다. 오거리를 지나 250m쯤 직진하면 왼쪽에 '북구 청소년 회관'을 거느린 야산이 나타난다. 야산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공원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공원 안 배드민턴장 회원들은 그 이름을 대체로 알고 있을 법하다. 북구 산격동 산9-2번지에 있는 테니스장의 이름은 '대불 배드민턴 클럽'이다. 공원 이름이 '대불 공원'인 까닭에 자연스레 그런 이름을 얻었다.
대불이라면 얼핏 '大佛(대불)'이 떠오른다. 공원 안이나 인근에 대불사라는 고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공원과 배드민턴장에 대불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그뿐이 아니다. 왼쪽으로 대불 공원을 낀 채 검단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도 이름이 '대불 서로'이다. 복현동 536번지(검단로 8-14)의 건물에도 '대불 노인 복지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구EXCO 뒤편에는 '대불 스포츠 센터'도 있다.
대불동은 없는데 '대불' 이름 붙은 곳은 많아
대불동도 아닌 복현동과 산격동에 대불 공원, 대불 배드민턴 클럽, 대불 노인 복지관, 대불 서로, 대불 스포츠 센터 등이 있다? 이 일대와 대불이라는 어휘 사이에 역사적 상관성이 있겠다 싶은 느낌이 저절로 일어난다. '북구 청소년 회관 건립 유래비'를 읽어본다.
대구의 영봉 팔공산의 웅장한 자태와 유구한 금호강을 인접한 이곳 대불산 자락에 위치한 '북구 청소년 회관'은 원래 대불산 옆 대불지(일명 배자못)이 오랜 세월 동안 '아래들'을 비롯한 산격, 검단 일대의 농토를 비옥하게 적셔주던 것을 이 일대가 유통단지 등으로 개발되면서 그 용도가 택지로 바뀌게 되어 이를 기념하고자 당시 제2대 대구광역시 북구의회에서 '대불지 기념사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중략) 1998년 5월 1일 (북구 청소년 회관) 기공식을 갖고 2000년 12월 28일 개관식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유래비에 언급되어 있듯이, 복현오거리 일대는 불과 25년 전인 1994년만 해도 3만7천여 평(11,212㎡)에 이르는 크고 아름다운 호수였다. 개발 명목으로 매립하지 않았으면 대구 시민들은 오늘도 복현오거리 일대에서 이 호수와 만나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호수의 이름이 바로 대불지(大佛池)였다
옛날에 이 호수를 가다듬던 사람들은 커다란(大) 부처(佛)를 발굴했다. 그 이후 호수에 대불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제가 1918년에 제작한 <대구지형도>에 처음으로 대불지라는 이름이 나온다는 전영권의 <살고 싶은 대구, 흥미로운 대구 여행>에 따르면, 불상이 발견된 때는 1918년보다 이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16세기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8세기 <대구읍지>에는 대불지가 불상지(佛上池)로 기록되어 있다. 상(上)이 '윗 상'이므로 불상지는 '부처가 물 위로 떠오른 연못'이라는 뜻이다. 즉 불상지와 대불지는 속뜻이 같다. 대불지라는 이름이 16세기 이전부터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불지의 본래 이름은 배자못
불상지나 대불지로 불리기 전에는 이 호수에 이름이 없었을까? 못의 본래 이름이 '배채못'이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못 주변에 배씨와 채씨들이 많이 거주하여 그렇게 불렀는데, 뒷날 발음하기 쉽게 '배자못'으로 바뀌었다는 구전이다. 그러나 배채못 또는 배자못이라는 이름이 언제 생겨났는지, 그것이 불상지보다 먼저인지는 알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