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퀘벡시티를 거닐며 주위에서 들려오는 프랑스어를 듣고 있으니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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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달리기, 수영 모두 내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활력을 주었고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더 확장시켜 주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라는 월간신문을 10여 년 전부터 구독하고 있다. 주로 국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기사들-특히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심도있게 다루는-을 접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프랑스어로 된 기사들을 번역한 글들을 보면 가끔씩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럴 때면 프랑스어를 읽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를 그리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인가! 아니었다. 매달 배달되어 오는 신문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번역된 기사들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내가 예기치 않게 사랑이 찾아오듯 5년 전 여름 휴가 때 캐나다 동부 퀘벡시티로 여행을 갔다가 프랑스어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퀘벡시티를 거닐며 주위에서 들려오는 프랑스어를 듣고 있으니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프랑스라는 나라의 낭만적 이미지로 인해 뭔가 더 매력 있어 보이는 편견도 한 몫을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곧바로 프랑스어를 배웠느냐고? 그렇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한단 말인가! 물론 열정이 있었다면 프랑스 어학원이라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지에서의 갑작스런 충동은 나를 어학원까지 이끌지는 못했다. 2년여 정도 시간이 더 흘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가끔씩 들르던 인터넷 카페에 올려져 있는 프랑스어 기초문법 강좌 홍보가 눈에 들어왔다.
강좌 안내에는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정도를 3개월만 투자하면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문법을 공부하면서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물론 청소년용) 원서를 읽는다고. 와... 진짜? 프랑스어가 이렇게 만만한 언어였다니.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정시' 퇴근 후 강의 장소까지 거의 2시간이 걸렸지만 새로운 언어와 그 언어에 깃든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선생님은 첫날부터 빡빡하게 수업을 진행하셨다. 정말 프랑스어를 하나도 못하는 나같은 사람부터 알파벳 정도는 아는 분, 대학 때 교양 강의를 들었던 분 등 수강생 수준이 모두 달랐다. 다행히 기준은 프랑스어 생초보에 맞춰서 수업을 해주셨다. 아, 베, 세, 데... 영어와 알파벳은 거의 같은데 발음은 영 딴판이다. 게다가 이상야릇한 콧소리와 가래 뱉는 것 같은 소리, 또 결코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은 입모양과 혀모양.
다행히 완전 초보 수준에 맞춰주셔서 그럭저럭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들을 땐 정말 문법과 문장구조를 배우고 몇몇 단어만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린왕자>를 어설프게라도 읽을 수 있었다. 신기했다. 또 신기한 점은 우리나라에서 프랑스어가 매우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 아파트에서부터 빌라 이름, 크고 작은 까페와 식당들 간판에 프랑스어가 엄청 많다. 프랑스어 간판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지금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느냐고? 절대 그럴 리 없다. 언어는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프랑스어 기본을 공부하고 난 이후엔 그 자료들을 기초로 스마트폰에 있는 어학 어플로 여전히 계속 프랑스어를 연습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꿈꾸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원어로 수월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나를 또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간다.
고용 보장이 안 되는 시대. 이젠 퇴직 후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나는 퇴근 시간 후에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까? 뭐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보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지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퇴근 후 자유시간까지 앞으로 먹고 살 걱정에 쓰고 싶지는 않다. 단지 지금 내게 활력과 재미를 주는 것,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넓혀주는 것들을 하며 흥이 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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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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