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YMCA 2.8 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 전시된 2.9 독립선언서
김보예
'민족자결주의'에 자극받은 도쿄 유학생들
1918년 1월 8일 미국 윌슨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 '평화 원칙 14개조'를 제시한다. '평화 원칙 14개조'는 '민족자결주의(National Self-determination, 民族自決主義)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민족자결주의란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해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다.
'민족자결주의'는 도쿄 유학생들을 자극했다. 1918년 11월 22일 도쿄 조선유학생 학우회(이하, 학우회)에서는 웅변대회를 개최하고, 민족자결과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다. 당시 학우회는 재일조선인 유학생이 조직한 단체 중 세력이 가장 컸으며, 처음 유학 간 학생들은 반드시 가입해야만 했다. 또한 학우회는 잡지 <학광지>를 발간해 배일사상,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등 민족의식이 강한 단체였다.
학우회 웅변대회로부터 8일 뒤인 11월 30일. 일본의 각 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던 학생들이 또 다른 웅변대회를 개최하고 마찬가지로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을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9년 1월 6일 도쿄 YMCA 회관에서 열린 웅변대회는 2.8 독립선언의 시발탄이 되었다.
웅변대회가 끝난 1월 7일 새벽 1시. 김도연의 제안으로 최용팔, 서춘, 백관수, 윤창석, 송계백, 이종근, 김상덕, 최근우, 이광수, 김철수가 주요 멤버가 돼 2.8 독립선언을 본격적으로 기획한다.
이처럼 도쿄 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고 있을 때, 세계의 정세는 그들에게 등을 돌린다. 1919년 1월 18일, 전승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27개국 대표는 식민지 국가의 독립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모여 강화회의(평화회의)를 연다. 그러나 '민족자결주의'에 관한 내용, 즉 '각 민족의 독립'은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의 식민지에만 적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