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에 전화하면 일어나는 '황당한' 일

[주장] 60여 일에 달하는 김민혁군 아버지 심사 지연

등록 2019.08.06 08:32수정 2019.08.06 11:01
5
원고료로 응원
"무슬림으로 태어나 40년 넘게 살아왔다. 신앙은 스스로가 선택해 자발적으로 믿을 때 참된 것이 된다. 아들의 가톨릭 개종을 그냥 지켜봤던 것도 그런 이유였고, 아들을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도 같은 이유다." 

알라의 땅에서 태어나 이란무슬림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종교의 자유를 쫓고, 아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건 선택을 한 위대한 정신. 난민 심사 중인 김민혁군 아버지의 얘기다.

지난 6월 11일에 면접 심사가 있었으니 심사 결과를 기다린 지 벌써 60여 일이 되었다. 그동안 받은 건 심사를 내년 2월까지 6개월 더 연장한다는 심사연장통지서 하나. 심사연장통지서가 잘못 나간 거라느니, 심사 신청 후 6개월이 다가와 관행적으로 보낸 거라느니 하는 출입국외국인청의 말은 그냥 무시하겠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는 사람들이다. 지난주만해도 주말까지 결과를 내보내겠다고 해놓고 정작 예정된 날이 되자 언제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고 갑자기 말을 싹 바꿔 버린 사람들 아닌가.

자동응답기의 신비화된 논리

"면접 후 심사 기간은 신청 사유, 출신국의 국가정황, 사실조사의 난이도에 따라 달라진다."

자동응답기를 틀 듯 같은 대답을 반복하며 60여 일을 끌어온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난민과. 추상적이고 개괄적이고 원론적인 난민과의 논리, 그 논리대로라면 민혁군 아버지 심사결과는 언제 나올지 모른다. 민혁군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의 심사결과라도 언제 나올지 모른다. 오직 난민과만이 알 뿐. 이렇게 심사내용뿐만 아니라 심사발표시기조차도 신비화된다. 모호하고 구체성 없는 자동응답기의 논리 속에.

어쩌면 그래서 법무부는 난민심사업무처리지침을 공개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국가안보와 외교상의 기밀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다. 난민을 심사하는 지침이 무슨 안보와 외교 기밀과 관련 있다는 말인가. 대법원에서도 이를 지적해 공개를 명했는데, 지침을 개정해가며 새 지침에는 안보와 외교 기밀이 있어 공개 못 한다고 부득부득 우기고 있다.


취업제한지침 비공개는 또 어떤가. 1개월에서 3개월짜리 비자를 가진 난민신청자들이 어렵게 짧은 비자로 얻은 일자리, 고용계약서를 가지고 난민과를 찾아갔을 때 취업제한분야라 취업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황망함이란.

정보를 독점해야하기 때문이다. 판옵티콘(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형태)의 감시자처럼 우월한 위치에 서야 난민신청자들을 길들일 수 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심사,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심사를 기다리며 난민신청자들은 거대하게 우뚝 선 난민과 앞에서 숨을 죽인다.


전화 한 통 걸기가 두려워 불안에 떨면서 장기간의 대기 상태로 돌입한다. 보다 못한 주변 사람이 나서 전화 연결을 시도한다. 혹시 난민 인정에 영향을 주게 될지 몰라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전화를 건 게 6번. 여전히 돌아오는 건 모호한 대답이거나 서로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대답,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그나마 통화가 가능한 사람은 매일 다르다.

어제 통화한 사람은 오늘은 늘 회의 중이거나 출타 중인 것. 피로와 무력감을 불러오는 미끌미끌한 전화 응답 서비스. 이쯤 되면 난민과는 미로가 된다. 아무리 닿으려 해도 접속할 수 없는 카프카의 '성'처럼.

행정의 불투명성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만들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관료기구의 신비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한숨과 탄식이 늘어나는 것이다. 존엄과 용기는 짓밟히고 구겨져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 굴종을 강요당해 눈치만 보는 비루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가 출신 본국에서 어떤 영웅적 영혼을 지녔던 사람이었던 간에. 정신에 깊은 주름을 남기는 보이지 않는 폭력.

자체 모순의 논리 
 
  아버지의 난민 인정 재심사를 기다리면서 손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김민혁군.
아버지의 난민 인정 재심사를 기다리면서 손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김민혁군. 유지영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듯해도 그런 신비화엔 허점이 있다. 전문가가 아닌 제3자인 우리가 보기에도 너무 쉽게 눈에 들어오는 허술한 점. 다시 민혁군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심사기간부터 보자. 난민과의 논리대로라면 '난민신청사유, 출신국의 국가정황, 사실조사의 난이도'에 따라 면접 후 심사기간이 달라진다. 먼저 난민신청사유. 민혁군의 경우 면접심사 후 2주 만에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심사결과는 2주에서 4주 만에 나온다. 민혁군 아버지의 난민신청사유는 민혁군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런데 민혁군에 비해 심사기간이 4배 이상 걸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다음으로 출신국의 국가정황. 민혁군 아버지의 출신국은 이란이다. 동남아도 아니고, 왕권이 성직자들을 누르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아니고, 이슬람혁명을 통해 신정정치를 펼치고 있는 시아파의 본거지 이란.

마지막으로 사실조사의 난이도. 면접심사 후 난민과에서 사실조사를 위해 했던 작업은 성당 신부님에게 전화 한 통 한 게 전부였다. 이게 무슨 난이도 있는 확인 작업인가.

심사내용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민혁군 아버지 사안의 경우 내용 판단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개종의 진정성. 성당측은 면접 전 난민과에 민혁군 아버지의 신앙생활증언자료, 세례와 견진성사 증명서를 이미 다 제출했다. 그걸 바탕으로 심사관은 이례적으로 긴 5시간의 면접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면접 후 심사관이 직접 신부님과 전화로 통화를 해 개종의 진정성 여부에 대해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더 무엇이 필요한가.

둘째, 이란 사회의 박해 가능성. 이는 우리나라 외교부 자료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 이란은 종교 최고지도자가 우리로 치면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성직자 중에서 임명하는 사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나라다. 법률의 근간도 샤리아법에 따르며, 샤리아에 의하면 배교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다.

셋째, 이란의 민혁군 아버지의 개종에 대한 인지 가능성. 민혁군과 민혁군 아버지 사연은 수백 번 언론에 노출되었다. 동남아와 중동 유럽 언론에도 실린 적이 있다. 한국에 있는 이란대사관이 이걸 모른다는 것은 억측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그 억측이 맞다 하더라도, 그런 기대에 맞춰 이란으로 귀국하는 도박을 할 순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난민법에서도 난민을 합리적인 박해의 공포를 지닌 자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이런저런 이유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민혁군을 난민인정 해놓고 같은 위험에 처한 민혁군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이다. 민혁군 아버지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민혁군을 난민으로 인정한 조치가 잘못된 것이고, 만약 민혁군을 난민으로 인정한 조치가 잘못이었다면 스스로 심사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기 자초하는 법무부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사례의 비교 분석만으로도 이렇게 난민과의 신비화된 논리는 허점을 드러낸다. 사례는 계속 쌓이고 언론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언제까지 그런 애매한 논리로 버틸 생각인가. 작년 예멘인 입국 사태 이후 합리적인 난민정책 수립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있는 게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크고 작은 잘못으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어떤 법제를 내놓든 그 주체가 법무부라면 쉽게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거창하게 법제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개별 난민심사의 공정성 문제에 누가 쉽게 법무부 편에 서겠는가.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출입국 업무 중 난민업무는 외교부로 이관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법무부 당국자들이 스스로 심각하게 물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60일이란 시간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결과를 기다리며 무한의 기다림 속에 방치된 민혁군 아버지에겐 끔찍한 형벌이었다. 한국에서 추방당해 이란 땅에 서 있는 악몽에 시달리고, 취업이 금지된 기간 내내 생계의 위협에 떨면서 이제는 정말 쑥과 마늘로 버텨야 할 한계에 이른 시간.

법무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지금이라도 민혁군 아버님의 심사를 난민법의 취지에 맞춰 신속하고 공정하게 마치는 것, 더 이상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난민인정서를 교부하는 것, 그것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난민과가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오현록 기자는 김민혁군과 사제 관계로 김군 아버지의 난민인정을 돕고 있다.
#난민 #법무부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3. 3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