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명절 먹었던 제주의 해물탕, 다같이 먹어 그런지 국물이 끝내줬다
이은혜
결혼 후 첫 명절이었던 2013년 추석 이후 시어머니와 나는 11번의 명절을 함께 보냈다. 명절 풍경은 자주 바뀌었다. 배경지는 제주였다가 서울이 되었고, 시누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사람 수도 늘었다. 오손도손 떡국을 해먹는 설도 있었고, 근사한 예약제 정찬집에 가본 추석도 있었다. 그 가운데서 변하지 않은 것은 딱 하나, 모이는 이들의 '웃는 얼굴'이다.
상차리기부터 설거지까지 모두가 역할을 분담하니 과도한 노동이 없고, 음식도 갈비찜이나 대하구이 같은 메인 메뉴만 만들어 내놓으니 기름 냄새에 체하는 사람도 없다. 여차하면 외식으로만 식사를 하기도 한다. 덕분에 나는 그 드물다는 명절 증후군 없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구성원 전체가 즐거워야 명절'이라는 시어머니의 명제 아래 시작된 변화였다.
전을 부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 가족은 다들 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만들지 않는 것뿐이다. 내 시어머니의 말씀처럼, '왜 모였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명절을 사전으로 검색해 보면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라는 설명이 나온다. 줄일 수 있는 일은 줄이고, 줄일 수 없는 일은 공평하게 분담하니, 비로소 명절을 '즐기고 기념하는 때'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부디 이번 추석에는 덜 일하는 집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노동을 덜어낸 만큼 담소를 채워 넣어 풍요로운 한가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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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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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사이다 발언 "명절에 전 먹으러 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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