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유허비수운 최제우 유허비
김환대
예수나 마호메트도 주문과 기도로써 신도들의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였다. 정신신경과 의사는 종교체험과 관련,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종교체험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사실이다. 그것은 환각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감정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 환각이나 감정을 통해서 한 개인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해소되고 또 상징적 암시를 통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새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종교체험의 진의가 있는 것이다. (주석 3)
모세(B.C. 1500)는 40세에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황야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천둥소리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고, 조로아스터(B.C. 650)는 30세 되던 해 사발란산 동굴에서 명상 중에 하느님을 보았다고 한다. 석가모니 불타(B.C. 650)는 35세에 보리수 나무 밑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예수(B.C.4~A.D. 28)는 30세 무렵 황야와 사막을 헤메이면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산상설교'를 통해 진리를 설파하고, 모하메드(570~632)는 15년 동안 사막을 떠돌며 장사를 하고, 잠시 쉬기 위해 산꼭대기에 올라갔다가 수평선 너머로 불타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양피지가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모하메트, 너는 하느님의 사자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조지 폭스(1624~1691)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다가 진리를 찾고자 습기찬 들판과 짚더미 밑에서 수년을 지내며 고독한 명상 끝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퀘이커를 창설하였다.
최제우는 37세인 1860년 4월 5일 오전 11시 용담에서 '한울님의 계시로' 후천개벽의 새 원리인 동학을 각도(覺道)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다.
기성의 고전종교가 혼란에 빠진 세상을 건질 만한 힘이 없고 이미 그 기능과 가치가 상실됨에 따라 새로운 종교사상에 의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서구문명의 충격을 민족주체적인 슬기와 역사감각으로 극복하고 민족적 전통사상의 바탕 위에 모든 종교사상을 수용하는 한국의 정신적 토양속에서 새로운 종교가 탄생되었으니 이것이 곧 동학이요 오늘의 천도교이다.
천도교는 수운 대선사, 최제우에 의하여 신의 가르침을 받아 창도되었다. 즉 천도교는 한국민족이 수 천년에 걸쳐 외래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용하고 극복한 민족문화의 주체적인 표출로서 민족사상인 한사상의 현대적 결실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옛날의 풍류도가 그랬던 것처럼 천도교가 모든 종교사상을 포용하는 것은 민족전통성의 계승으로 우연의 일이 아닐 것이다. (주석 4)
주석
2> 『동경대전』, 「포덕문」ㆍ「논학문」.
3> 김광일, 「최수운의 종교체험」, 『최수운 연구』 한국사상 12, 74쪽, 한국사상연구회, 1974.
4> 홍장화, 「한 사상과 천도교」, 『한 사상과 민족종교』, 106~107쪽, 일지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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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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