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여부를 판단하고, 직업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활동은 기술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사활동이 산재예방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산업재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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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가 많은 조사결과, 결국 해석의 문제
기나긴 시간을 거쳐 조사 결과가 발표되지만, 원인과 해결방안이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 제기되는 문제들은 중독과 같은 전통적인 직업병과 달리, 일반인구 집단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는 암, 심장질환, 정신질환 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직업적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오히려 비직업적인 원인 또한 드러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다보니 조사과정에서 우리가 직업병이라 주장하는 근거만큼이나 직업병이 아니라는 근거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병은 이미 100% 직업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보다는 ①직업적 원인이 일정한 기여를 하거나, ②직업적인 요인이 일반적인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거나, ③일반적인 요인과 직업적인 요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해당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직업적 원인을 희석시키고 업무관련의 불확실성을 키움으로써 산업재해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자본과 기업의 전략이 손쉽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조사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매우 중요해 진다. 통계적 방법을 통해 도출된 양적인 결과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직업병이라는 복잡다단한 현상을 설명해 내기 어렵다. 산업변화에 따라 직업병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지고, 직업병의 발병 양상도 복잡다단해졌다. 각 상황마다 위험 물질 노출 양상이 균질적이지 않으며, 여러 위험요인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이뤄진다. 과연 전통적인 역학연구 방법론만으로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분석해낼 수 있을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질적 방법론을 적극 조사과정에 반영하고, 당사자들의 상황과 업무 그리고 발병까지의 맥락을 이해하는 섬세한 해석과 예방과 연계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하기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 있다면, 적합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그러한 대책은 공감을 얻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의 크기만을 확인하고 원인을 찾지 못했거나, 유력한 원인을 확인했지만 경쟁하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여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조사가 정말 예방을 위한 것이라면, 관점이나 방향이 없는 조사결과 발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명확한' 원인이 아니더라도 '유력한' 원인이 밝혀질 수 있다.
이러한 유력한 원인들이 드러났다면, 예방을 위해 보편적인 조치를 활용할 수 있다. 해당 요인들을 제거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예방 대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직접적이거나 명확한 원인이 없다고 해서,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거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조사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며, 형식적인 조사문건 하나를 더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이렇게 조사결과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추가조사를 여러 방향에서 제안하고 실행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조사를 통해 제안된 권고 내용은 잘 지켜지고 있나?
수백,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 보고서는 꼼꼼한 결과와 해석, 권고안이 담겨져 있다. 그동안 수행했던 역학조사와 직업병 실태 조사 보고서는 조사자들의 노력과 피해자들의 피땀이 실린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보고서에 담긴 수많은 권고안들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모든 조사 보고서에는 권고안이 제대로 지켜지는 지 점검하고, 상황 변화가 발생할 경우, 수정된 대안을 제시하고, 변화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이행점검단이 제안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단계를 예비하기 위함이다. 조사는 끝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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