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안내문 게시된 로마 공항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가 전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 1월 21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국제공항에 중국 우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AP
최근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발 입국을 전면 불허하고, 중국을 잇는 정기 항공편을 임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로마에서 체류하던 중국인 관광객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서, 이들의 동선을 추적하는 등 접촉자를 확인하기 위한 역학 조사에 착수했다.
세계 각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확산 속도는 좀체 꺾이지 않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이번 사태를 '악마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군대까지 투입하는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키고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라면서, 도시 간의 이동을 금지하는 극약 처방까지 내려진 상황이다.
이렇듯 엄중한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 현재 이탈리아 내 중국인 관광객들은 최대한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처럼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고,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도 크게 늘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마스크가 비슷한 외모의 동양인 관광객들 중 중국인을 식별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됐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다. 그들 모두가 우한이 고향은 아닐 테고, 이탈리아에 오기 전 우한을 여행한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또, 기침과 발열 등 의심 증상을 겪고 있는 이들이라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감염될 게 두려워서도 아닐 테고, 정부로부터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진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마스크 차림을 한 건, 어쨌든 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전 세계에 확산시킨 '주범'이라는 미안함 때문 아닐까 싶다. 뉴스의 '주인공'이 된 이상, 그들 스스로 '자진 납세'를 통해 극도로 경계하며 조심하고 있다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행동이라는 해석이 가장 그럴 듯하게 들린다.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느긋'
그런데,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 중에 마스크를 착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TV에서는 매 시간 다급하게 속보를 내고 있지만,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아직까지는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워낙 낙천적이고 느긋한 성격이라 그런지,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에도 사람들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외려 이방인 관광객들이 더 긴장하는 모습이다.
'우한 폐렴'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부를 때쯤으로 기억한다. 이탈리아 어린이들이 중국인 관광객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이른바 '베네치아 사건'이 터졌다. 베네치아로 가기 며칠 전,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현지 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한 기사였지만, 내용이 엽기적인 만큼, 여러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베네치아에 도착한 날, 호텔 체크인을 하며 직원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전혀 모른다고 했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다들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근거 없는 가짜뉴스는 분명 아닐테지만 한국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와 현지의 반응 사이에서 큰 온도차를 느꼈다.
또,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 정박해 있던 크루즈에서 중국인 감염 의심 환자로 인해 7천 명의 승객이 하루 동안 격리되었다는 뉴스도 억측이 더해지며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중국인이 감염 사실을 숨겼다거나, 7천 명 중 상당수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루머가 그것이다. 감염 의심 환자는 중년의 홍콩 여성이고, 이내 음성으로 판명되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것이 팩트다.
SNS를 통해 확산되는 가짜 뉴스와,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기는커녕 선정적인 기사로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국내외 언론들의 행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어처구니없는 기사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언론이 진원지인 것도 적지 않다. 지금 중국인들은 바이러스의 원인로 낙인찍히며 '공공의 적'이 되었지만, 이를 부추기는 건 국가 간의 불필요한 갈등만 야기할 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와 한국은 다르고, 달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