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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프고 우리는 행복하다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와 매일 행복한 '오늘'을 삽니다

등록 2020.04.26 20:21수정 2020.04.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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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아이는 아프고 우리는 행복하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이가 갑자기 숨을 잘 못 쉬어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몇 시간 검사 끝에 처음 대면한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한 말이지만 남편은 그때 내가 통곡할 줄 알았다고 했다. 아니다. 빨리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울 시간이 없다.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났습니다"
 

ⓒ 홍정희


갈비뼈가 여러 개씩 붙은 채 구불구불 휘어 있었다. 의사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경우라고 했다. 척추도 휘어 있었다.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호흡만 정상적으로 가능하도록 조치한 뒤, 예약해둔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그 사이 우리는 아이 눈이 이상하다는 점도 발견했다.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서울대병원에서도 병을 찾는데 3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전 세계 5명밖에 보고된 사례가 없는 희귀질환. 우리 아이가 우리나라 1명이 된 셈이다. 눈은 보인다고 했다. 단지 눈동자가 정면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됐다. 다행이다. 옆을 보려면 고개를 돌리면 된다. 정확히는 한쪽 눈은 고정이고 다른 한쪽 눈은 미세하게 안쪽, 위쪽, 아래쪽으로 움직인다.

이 질병이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근육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두 눈동자가 초점이 서로 맞지 않아 사시처럼 보인다. 괜찮다. 보이는 걸로 됐다. 이마저도 돌이 지나니 증상이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다. 스스로 초점을 맞추어 나가는가 싶다.

그 사이 아이는 잘 자라서 20개월. 지금은 서울대병원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지만 특별한 치료를 하는 건 아니다. 이 질환을 가지고 어떻게 자라나 점검하는 정도이다.


갈비뼈는 붙은 채로 자라주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 했다. 갈비뼈가 심장을 누르고 있지만 심장 기능도 정상적으로 회복했다. 척추는 휘는 게 진행 중이라 예의주시하고 있다. 얼마 전 검사에선 휘는 속도가 더뎌 지금 상태라면 치료 없이 살아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백 번 말한다.
 

ⓒ 홍정희

 
우리는 빠르게 일상을 회복해 나갔다. 아픈 채로 살아갈 궁리를 했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남편은 나중에 아이랑 수영을 해야겠다고 했다. 갈비뼈가 붙어 숨쉬기 어려우니 심폐기능을 높여줘야겠다는 것이다. 치료법이라도 발견한 듯 나는 동조했다.

아픈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드디어 아이를 품에 안고 같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했다. 새벽녘 깬 아이를 안고 어스름 푸른 창가에 서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지막이 노래 부르며 조금 울 뿐이었다. 이 평온한 일상이 감사해서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아이가 숨 쉬며 내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픈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엔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매일 울게 되는 줄 알았다. 아프면 불행할 줄 알았다. 남편과 나는 자주 이야기한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어도 지금과 똑같이 살았겠다고. 아이가 아프든, 아프지 않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며 키울 것이라고.

아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없는 걸 욕심내지 않는다. 있는 것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눈동자가 돌아가지 않으면 어떠랴, 엄마, 아빠랑 산책 나가 반짝이는 바다를 볼 수 있고, 매일 뛰어노는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푸릇푸릇 솟아나는 초록 잔디를 주저앉아 만질 수 있다.

척추가 갑자기 막 휘면 어떡하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건 그렇게 됐을 때 생각하기로 한다. 그냥 오늘을 살면 된다. 지금 아이와 남편은 좁은 거실 끝에서 끝으로 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홍정희

 
그러나 이 말은 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다. 아이가 이 정도라, 이렇게 일상을 살 수 있는 정도라 가능한 말. 더 아프고 매일 울 수밖에 없는 사람 앞에서 이 말은 오만일 수 있겠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이것은 순전히 내 상황에서 그러한 것이리라. 그저 감사할 수밖에. 조금 덜 아픈 순간이 찾아오면 그들도 잠시 웃게 해 주시기를 그저 기도할 뿐이다. 진실로 진실로 기도할 뿐이다.

#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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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국어 교사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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