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옷장은 무슨 색으로 채워져 있나요?

초록색 정장을 입고 당당히 걸을 수 있길 바라며

등록 2020.04.24 09:44수정 2020.04.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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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옷장 사진. 출처 pixabay. ⓒ pixabay

 
당신은 내일 당장 와인색 정장을 입고 회사를 출근할 자신이 있는가? 혹은 초록색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걸을 자신 있는가? 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없다. 차마 그럴 자신 없다.


점심 시간 회사들이 밀집된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의 옷을 살펴 봤다. 검정색, 흰색, 회색. 종종 네이비, 베이지 정도로 무난하게 맞춰 입은 직장인들이 주가 됐다. 거울을 봤다. 나도 그렇게 입고 있었다. 

전 직장 상사A는 내가 올블랙으로 입은 날이면 "오늘 장례식 가요?" 하고 놀렸다. 연수원 동기 B는 오늘도 새까맣네, 농담을 건낸다. 한두 번은 그냥 '네!' 혹은' '어쩌라고'로 응대하다, 내 옷장을 진지하게 관찰했다. 빨간색은 없다. 노란색조차 없다. 보라색? 있을리 더욱 만무한 얘기. 

창고에 던져 놓은 리빙박스까지 가져와 여니 그 안에 5년도 더 된, 차마 가격과 상표 등 기타 이유 때문에 버리지 못한 화려한 프린트와 금장 단추 등 수치스러움을 불러 일으키는 옷들이 울고 있었다. '이걸 대체 예전엔 어떻게 입고 다녔지?' 쓰레기통에 구겨 넣다 생각이 번쩍. 언제부터 내 옷장은 무채색으로 가득 해졌나
   

기자의 옷장 기자 본인이 직접 찍은 기자의 옷장 사진 1 ⓒ 김주용


'무채색 삼형제에 대한 고찰'

검정색은 몸매의 만족스럽지 않은 굴곡과 단점을 가려주고, 고급스러움과 무게감을 더해준다. 어지간히 게걸스럽게 먹으며 옷에 양념을 다 튀기지 않는 이상, 오염된다해도 쉽게 티가 나지 않는다. 비즈니스, 장례식, 결혼식, 모임, 일상 어디에든 어울린다. 

흰색은 어떤가. '흰색 티'나 '흰색 셔츠'를 입는다고 '저 사람 옷 특이해'라며 손가락질하거나 쏘아볼 사람이 있나? 물론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이트로 쫙 뽑아 입는다면 특정 유명인이나 결혼식을 연상시키겠지만 대게는 젊은 이미지를, 선량하고 밝은 이미지를 주기 좋다. 심리학적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회색 역시 튀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엑솔타의 '2018년 자동차 색상 선호도' 조사의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량의 색은 흰색 32%, 회색이 21%, 솔리드 흰색이 19%, 검정이 16%, 나머지 13% 펄이 들어간 흰색이다. 한 번 뽑으면 비용을 들이지 않는 한 '쭉' 함께할 차량의 색만 봐도 무채색 삼형제의 대한 선호도는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 시선 ⓒ pixabay

 
"아무도 남 옷의 그렇게 신경안써!" 는 새빨간 거짓말

잡코리아가 과거 남녀 직장인 502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패션'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67.7%가 '회사 생활에서 패션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 '단정하고 신뢰감 있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가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이 '자기 만족을 위해'가 37.5%를 차지했지만, 기타 순위는 모두 '타인의 시선'과 얽매인 경우였다. 회사 동료들의 패션에 신경을 쓰냐는 질문에 44.6%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갤럽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1,7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 결과 좋아하는 옷 색깔이 검은색 28%, 흰색 15%, 파란색 11% 순이었다. 실로 엄청난 무채색 삼형제의 비중이다. 막내 회색을 제치고 '파란색'과 '남색'이 3,4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여전히 무채색은 강세다. 또, 같은 기관에서 같은 주제로 조사한 결과는 살펴보면 과거 2004년, 2014년에도 검은색이 1위였다.

이렇듯 무채색이 압도적인 선호도를 띄는 사회 분위기의 과감하게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녹색, 보라색을 입을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을 것이다. '컬러풀'한 인간의 등장은 눈에 띄는 반기가 되는 것이다. 무채색은, 나를 보호하는 '보호색'이다.
  

옷 ⓒ pixabay


눈치 좀 주지 맙시다!

등장 이후부터 '대세'가 된 EBS 인기스타 '펭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놀랍게도 이 말이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기업 인사담당자 42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펭수 어록' 중 가장 공감되는 말로 2위( 19.2%)를 차지한 답이다. 1위는 다 잘할 순 없다(39.1%), 5위는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존중해주길 부탁해(9.5%)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눈치 보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눈치 보게 하고 눈치 주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다. 개인이 어떻게 사회에 맞서 온전히 개인을 유지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터진 후 '기침'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 버스에서 '콜록'하는 순간 일순간 꽂히는 시선을 포착하거나 느낀 적 없는가. '혼밥', '나혼자산다'가 관심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로, 그 시작은 집단주의와 공동체 문화에서 그렇지 않은 자들의 행보가 '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혼밥은 유행어다. 유행어는 경우에 따라 다르나, 보통 짧게 유행하고 금세 사라지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혼밥이란 단어가 생긴 지가 몇 년이 됐는 데도 아직도 쓰인다. "야 그러면 좀 어때! 혼자면 어때!"하는 반발심리가 쌓이고 쌓이다 곯아 터져가며 눈치보며 살던 이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한 잔이 된 것이 사장되지 않은 이유라 본다. 

내 옷장에 무채색 옷이 가득한 건, 정말 나의 '선호색'이어서일까. 다시 의문이 든다. 아니면 강요된 걸까? 나는 오늘 노란색 맨투맨 한 장을 구매할 예정이다. 아주 작은 노력이지만 큰 용기를 내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될 예정입니다.
#트렌드 #요즘옷 #봄옷 #여름옷 #무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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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남이 살아주는 거 아니잖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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