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길 초입에서 (Portra400) 전주천과 만경강이 합쳐지기 전 송천동 쪽의 천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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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주제는 단연코 벚꽃이었다. 4월 중순 만경강의 벚나무에는 솜사탕같은 꽃망울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유원지 등으로 꾸며져 있지 않아서 단순히 지나가는 강변길이긴 하지만 벚꽃의 행렬이 상당히 길고, 꾸며지지 않은 습지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해마다 상춘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송천동에서 전주천의 북쪽편 길(가리내로)로 들어가면 위 사진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 상태에서 계속 직진하면 만경강의 상류로 가다가 소양천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쪽은 벚나무가 많지 않다. 만경강의 하류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전주에서 만경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전주천과 소양천, 그리고 고산천 등이 함께 만나는 구간이 나온다. 그래서 길을 모른 채로 가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갈 확률이 크다. 미리 지도를 보고 계획을 하고 진행해야 한다. 미산교를 건너서 전주천의 남쪽편 길로 경로를 바꾸고 그대로 직진하면 만경강변길로 익산까지 쭉 갈 수 있다. 환상적인 벚꽃길이다.

▲만경강과 벚나무 (Ektar100) 만경강은 습지가 잘 보존되어있다. 철새와 억새, 많은 나무들의 서식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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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정류장 (Portra400) 버스정류장이 운치있어 마을에 차를 대고 한참을 걸어올라와 사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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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는 내내 차창 밖으로는 꽃이 만발해 있었고 차 안에는 이야기꽃이 가득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자전거 길 경로에 대해 대화했고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집안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사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행복한 여행이었다.
아래 사진부터는 익산에서 다리를 건너, 건너편 길로 다시 돌아가는 길의 풍경을 담은 것이다. 만경강의 북쪽 둑길인데 상류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비비정이 나온다. 사람이 많아 그곳은 그냥 지나쳤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역시 벚꽃 천지이다.

▲연두와 분홍의 대화 (Ektar100) 햇살이 좋으면 색상이 산뜻하게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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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벚꽃, 유채꽃 (Ektar100) 익산천과 만경강이 만나는 부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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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상에는 사람이 없지만 실제로는 예상보다 인파가 꽤 되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봄날의 기운을 만끽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본적인 방역 태세가 일상적으로 자리잡은 듯했다.
만경강은 도심을 통과함에도 불구하고 꽤나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면서 흐른다. 길이가 길지 않아서 거치는 도시가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온 처음 물빛이 비교적 잘 유지되는 편이다.
그래서 보통의 자유곡류하천에 비해 냄새도 적고 경관도 깔끔하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신록이 우거지며,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이다. 끊어진 구간 없이 수변로를 연결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트래킹족이나 바이크족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부디 지금의 모습이 계속해서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경강 푸른 물 (Ektar) 익산천과 합수하는 부분에서 건너편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벚꽃이 줄지어 피어있고 습지의 나무에 새로운 이파리가 연둣빛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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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익산까지 강변으로 왕복하며 벚꽃을 구경했는데도 정오가 겨우 지났다. 아침 일찍 나온 덕분이다. 차량의 행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체가 진행되는 구간을 유유히 빠져나와 점심식사를 할 장소를 물색했다.
아침 일찍 사온 김밥을 차에서 먹는 방식이어서, 전망 좋은 곳을 찾으면 그곳이 바로 식당이 된다. 연로하신 외할머니와 안전한 식사를 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이번에 식당으로 삼은 곳은 동상면 저수지 안쪽이다. 차를 세우고 밥을 먹은 후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허리도 펴고 바람도 쐬었다.

▲이동식 식당 (Ektar100) 바람은 아직 찼지만 햇살이 좋아서 차 내부의 온도가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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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경 (Ektar100) 거닐던 사람들이 가고 우리만 남아 바람을 잠시 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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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으로 나들이를 떠났던 첫 여행에서는, 오후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외할머니께 또 들르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다. 외할머니는 임실의 호국원을 말씀하셨다. 고인이신 외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명절 후 시간이 흘러 꽃을 갈아 줄 때도 되었기에 우리 가족은 호국원으로 향했다. 가판대에서 눈에 들어온 세 개의 꽃다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외할아버지 산소 앞으로 갔다. 따스한 햇살을 받고 앉은 외할머니는 잠시 상념에 휩싸인듯 하더니 이내 하고픈 말을 꺼내기 시작하셨다.
▲고인과의 대화 (Ektar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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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짝서 잘 있능가 모르겄다. 나도 살 만큼 살면 가야지."
"우리 자석덜 좀 잘 되게 힘좀 써줏씨오. 그러게 둔눠있지만 말고. 으이?"
듣던 아버지가 위트 있게 한 마디 던진다.
"아이고, 장모님. 우리 장인어른은 돌아가셔서까지 어머니 잔소리를 듣네에."
한바탕 웃으신 외할머니가 주섬주섬 일어나 천천히 자리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도 역시 왁자지껄 수다가 가득했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직장 생활, 취미 생활 중에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외할머니와 더욱 더 자주 나들이를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후 봄볕이 조금씩 짙어지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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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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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후 처음.... 외할머니와 드라이브스루 벚꽃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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