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인천 강화도 석모도의 대북물품 살포현장에서 경찰이 수거한 대북 살포물에는 쌀, 성경, 유인물 등이 들어 있다.
이희훈
해방 직후와 지난 10년의 공통점은 이북 출신 보수단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물론 해방 직후에 비해 지난 10년간은 활동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탈북민(탈북자) 단체들이 의욕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두 시기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해방 공간에서는 미군정과 친일·보수파의 지원을 받는 이북 청년단체들의 활약이 두각을 나타냈다.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이들은 친일 청산과 분단 반대를 외치는 남한 대중과 진보 진영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미군정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남한 경찰이 하기 힘든 '피 묻히는 일'을 수행한 결과로 객지인 38도선 이남에서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는 두 지역의 냉전에 기초했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냉전 구도가 미국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는 1948년 제주 4·3 항쟁을 빌미로, 유럽에서는 1946년 그리스 내전을 빌미로 각각의 대륙에서 긴장 구도를 정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소련과의 양자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해방 정국에서 탈북민 단체들은 4·3을 비롯한 민중 운동을 폭력적으로 분쇄하고 좌우 이념대결을 부추기는 역할을 해냈다. 이들의 활동은 친일 청산과 분단 반대라는 이슈가 희석되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힘을 얻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이 원하는 동아시아 냉전 구도의 창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방 공간의 이북 출신 단체들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대표적인 탈북민 지원 단체이자 미 국무부의 입김을 받는 기구인 국립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는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탈북민 단체나 대북 매체들에 쏟아붓고 있다.
미국의 힘을 추구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3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외형상으로는 미국식 민주주의 확산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패권 팽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의 동유럽 공산권이나 티베트 등에서 이들은 반체제 혹은 반정부 활동을 지원했다.
NED가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운동에 개입했다는 BBC 뉴스의 보도도 있었다. 이 보도는 2014년 10월 30일자 <글로벌 이코노믹> 기사 'BBC, 홍콩 시위는 국외 비밀세력에 의한 계획적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NED가 탈북민 단체를 지원한다는 것은 해방 공간에서 두드러진 이북 출신 단체들의 '활약상'이 NED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별도 단체 꾸린 형제
오늘날 그런 수혜를 누리는 탈북민 단체 중 하나가 박상학씨로 대표되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다. 최근 대북전단 문제로 북한의 대남 압박에 빌미를 제공한 이 단체는 미국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살포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 양혜왕 편에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가질 수 없다(若民,則無恆產,因無恆心)'는 구절이 있다. 이 말처럼, 안정된 재산이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안정된 마음을 갖기가 유리하다. 이런 이치를 반영한 것이 민법상의 재단법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단법인은 '회원들'의 모임에 법적 인격이 부여된 데 비해, 재단법인은 '재산' 자체를 중심으로 법인격이 부여되는 단체다. 사단법인은 회원들의 의견이 갈라지면 분열하고 해체할 수 있지만, 재단법인은 재산이 유지되고 그 재산의 관리자가 존재하는 한은 비교적 오랫동안 안정성을 이어나갈 수 있다.
봉고차 한두 대에 탑승한 소수의 사람들이 전방 지역에 내려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언론 인터뷰로 자신들의 활동을 홍보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같은 탈북민 단체들의 경우에는, 사단법인보다는 재단법인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들을 관찰하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다. 통일부에 어떻게 등록돼 있든 간에, 이들을 분석할 때는 재단법인을 염두에 두고 관찰하는 게 실효적이다.
이들을 관찰할 때는 '회원들이 어떠한가'보다는 '자금이 어떠한가'에 주목해야 한다. 시민단체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인 10여 명이 전단을 살포하며 뉴스 화면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상시적인 회원 숫자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외부의 금전 지원이 확실하다면 대표자 1인이 그 자금을 갖고 위와 같은 활동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금이 들어오는 곳이 어디이며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중심으로 이들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박상학 대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홈페이지도 그를 중심으로 꾸려져 있다. 이 단체의 본령이 '회원들'이 아니라 '자금'이라는 점은 동생 박정오씨가 큰샘이라는 별도의 탈북자 단체를 운영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 형제는 각각의 단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함께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객지에 와서 함께 활동하는 형제가 각각의 단체 명의로 활동하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이들의 단체가 '회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회원 1명이 아쉬운 시민단체에서 두 형제가 별도의 단체를 꾸리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금'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단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체에 지원되는 외부 자금을 기대하고 탈북자 단체를 만든 것이라면, 두 형제가 같은 단체 명의로 활동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단체 명의로 활동하는 게 더 실리적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