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이 쓴 <나는 말하듯이 쓴다> 겉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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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 권의 글쓰기 관련 책을 냈는데, 글쓰기에 대하여 또 무슨 할 말이 남아 있을까 하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아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책 제목 그대로이다. 잘 쓰고 잘 말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저자의 고민과 경험으로 녹여낸 책이다. 오랫동안 남의 글을 쓰고 읽다가 오십 줄에 들어서야 글쓰기와 말하기가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제안한 책제목은 말하듯 쓰고, 글 쓰듯 말하라 였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말을 잘해야 하고 말을 잘 하고 싶으면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본문 중에서)
"말을 잘 하려면 글로써 말을 준비해야 한다. 말하듯 쓰려면 말을 많이 해봐야 한다. 말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잘 쓸 수 없다. 마음을 다해 말하고 말한 것을 글로 써보고, 또 말하기 위해 글을 써 보는 것. 이것이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기 위한 내 노력의 전부다." (본문 중에서)
결론은 뻔하지만 내용은 알찬
한마디로 결론은 참 뻔한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알차다. 말과 글의 기본이 되는 일곱 가지 힘,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기본 태도, 말과 글의 수준을 높이는 최고의 재료들, 말과 글 늘이기와 줄이기, 무조건 써놓고 고치기와 같은 저자의 깊은 고민이 담긴 글쓰기와 말하기 팁을 고스란히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에 와닿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었다. 저자에게서 바로 내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질문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모르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다. 모르는 게 부끄러워서 질문하지 않는다. 또한 나서기 싫어서다." 사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잘 쓰고 잘 말하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다행히 잘 묻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첫째는 모르는 것을 묻고, 둘째는 이유나 목적을 묻고, 셋째는 그게 맞는지 묻고 마지막으로는 자문자답을 해보라고 알려준다. 이건 나에게도 아주 유익한 방법이라 따로 정리해 두었다.
"말하다 보면 정리가 된다"는 대목도 무척 솔깃하였다. 사실 이런 경험은 다른 분들도 많을 것이다. 아직 명료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 하다보면 훨씬 체계적으로 정리될 때가 있다.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할 때도 그런 경험이 많이 있다.
의미 있게 읽었던 부분을 강조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책을 읽을 때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예시가 떠오르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그런 경험들 말이다. 토론에 참여하여 이야기 하다 보면 어느새 논리적인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작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근무 시간에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보태진다. 남들이 아이디어를 보태주는 경우보다 스스로 생각에 새로운 생각을 더 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와 관련해서 평소 내 생각과 똑같은 대목도 있었다. 작가는 아니지만 블로그에 자주 글을 쓰는 나도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글로 못 쓰겠다"는 말을 들으면 꼭 이런 말을 해준다. "생각이 정리되어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일단 글로 쓰기 시작하면 생각이 정리된다"고.
나의 경우 대부분의 글은 머리에 잘 정리된 내용을 한 번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글을 쓰다보면 자료도 더 찾고 고민도 깊어지면서 마침내 가닥이 잡히고 정리가 되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도 산란한 마음을 정리할 때도 집중해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럴 땐 완성된 글이 안 나와도 그만이다. 강원국도 비슷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생각은 글로 표현되지만, 우리는 또한 글을 보며 생각한다. 생각을 쓰기도 하지만 쓰면서 생각하기도 한다. 생각과 글을 상호작용한다. 글쓰기 그 자체가 생각 근육을 단련한다." (본문 중에서)
결국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키우고 효과적으로 정리하려면 말을 해보거나 글로 써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개요를 작성하지 않는 글쓰기도 내 경우와 비슷하다. 개요는 글을 쓰다보면 가닥이 잡히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칼럼이나 주장하는 글을 쓸 때는 제목조차 글을 다 쓰고 바꾸는 일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하루키와 자신이 이런 점에서 닮았다고 하는데 나도 두 명의 유명작가와 닮았다.
기억 해두면 나의 글쓰기가 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에서 뽑아내 따로 정리해둔 내용은 '글맛을 살리는 법'이다. 책에는 자세한 설명이 있지만 짧게 요약해서 책상 앞에 붙여두는 용도로 정리해보았다.
▲ 주술호응에 가장 신경 써야 한다.
▲ 앞뒤 대등관계를 지켜라.
▲ 한자어보다는 우리말을 쓰라.
▲ 숙어를 많이 활용하라.
▲ 문장 전체를 꾸미는 양태부사를 활용하라.
▲ 짝이 있는 말은 짝을 맞춰 쓰라.
▲ 상투적 표현을 피하려고 노력하라.
▲ 일본어 잔재를 피하라.
▲ 어휘와 문장의 디테일에 주목하라.
닥치는 대로 글을 쓰는 나에겐 이런 지침을 가까이 두고 글을 쓰거나 고칠 때 자주 보고 기억해내야 할 내용들이다.
사람을 설득하는 글쓰기와 말하기
내가 자주 쓰는 성명서, 입장문, 기자회견문들은 논리적인 글이다. 저자는 논리적인 글이 되기 위하여 갖춰야 할 조건들을 따로 자세히 정리해두었다. 자주 활용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요약했다.
▲ 사리와 이치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
▲ 핵심과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 경험이나 편견을 벗어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 앞뒤의 연결, 인과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 논점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 근거가 풍부하고 확실해야 한다.
▲ 비약, 모순,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특히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야 하고 함부로 추측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많이 공감되었다. 아울러 비약, 모순, 왜곡하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도 깊이 새겼다. 마지막으로 한 대목만 더 소개하자면 말 잘하고 글 잘 쓰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잘 듣기'라는 것이다. 나는 이걸 잘 못하는 편이다. 특히 나이나 지위가 아랫사람인 경우에 나와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큰 단점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고 했다. 어떻게 들어야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들으려고 노력했다." (본문 중에서)
사실 나의 이런 단점을 잘 알기에 요즘은 최근 다른 책에서 읽은 구절 "사람은 옳은 말에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설득된다"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
아무래도 사람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리라. 잘 듣기 위해서는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요약하며 듣고, 둘째 의중을 헤아리면서 듣고, 셋째 공감하면서 듣고, 넷째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물으면서 들어야 한단다. 아울러 대답이나 반박을 준비하느라 딴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말을 자르고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는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글쓰기 책을 참 많이 읽은 편이다. 30년 전에 읽었던 <문장강화>부터 권정생, 이오덕, 유시민, 고종석, 강원국, 하이타니 겐지로, 다치바나 다카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쓴 글쓰기 책을 두루 읽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들처럼 쓰는 것은 더 어렵다.
다행인 것은 글쓰기 책을 읽는 것이 즐겁고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글을 쓰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저자와 출판사가 놓친 부제를 하나 달아본다면 이 책은 '직장인을 위한 글쓰기'라는 부제가 하나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글쓰기 말하기를 잘 하고 싶은 일 하는 분들에게 권해드린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
강원국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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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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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글쓰기, 둘 다 잘하고 싶은 사람은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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