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이 셋째 날을 맞은 28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전문의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선생님. 교사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의사 역시 동질적인 집단으로 여겨선 곤란합니다. 개원의들끼리도 지역에 따라, 연차에 따라, 전공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 다른데, 그들이 후배 의사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파업에 나섰을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거죠. 진심이라면, 진작에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부터 개선하려고 애써 주셨어야죠."
몇 해 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제자는 이렇게 단언했다. 서로 파업을 말하곤 있지만, 현직 의사와 전공의, 의대생들의 입장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제자는, 의사협회 집행부가 전공의들을 파업에 나서도록 선동해놓고선 최근 은근슬쩍 발을 빼고 있는 것 같다며 성토하기도 했다.
그는 파업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잃을 것이 많은' 그들은 끝내 꼬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의 정책이 실제 강행되더라도, 개원의들은 '직접적 영향권'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개원의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가운데, 전공의들이 현재 대정부 투쟁을 주도하는 이유도 결국 당장 '잃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병원 일도 힘들고 머리도 복잡한데 그냥 군대나 다녀와야겠다고 푸념하는 제자도 있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의사 선생님'이지만, 전공의는 업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매우 적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팍팍한 현실을 묵묵히 견뎌내는 건, 향후 전문의가 되고 나서 누리게 될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의사를 세대별로 '신분'을 나눠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학에 자리 잡은 50대 이상의 의사는 '성골'이고, 40대는 '진골', 갓 전문의를 취득하고 개원을 준비하는 30대는 '6두품'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비유다. 지금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6두품'에도 끼지 못하는 평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의사협회가 호언장담한 대로 개원의들까지 나선다 해도 이번 파업은 실패로 끝날 거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 여론이 한 번 '밥그릇 싸움'으로 규정하면, 그 어떤 파업도 필패라는 것이다. 거기에 '볼모론'까지 덧붙여지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 예컨대, 교사들이 파업하면 학생을 볼모 삼았다고, 의사들이 파업하면 환자를 볼모 삼았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더욱이 이번 파업은 정치적 환경마저 최악이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없었다고 해도 의사협회의 파업 결정이 섣불렀다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기본적인 사리 판단조차 부족해,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악수를 뒀다고 혹평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짜고짜 '4대 악'으로 규정하기 전에 주고받기식 타협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는 거다.
그는 이미 자신의 지역구에 공공 의대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한 국회의원들이 여럿 나온 터라, 파업 전에 논의의 퇴로가 차단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지역구에 의대만 유치되면 3선은 기본이라는 게 정치권의 불문율이다. 현재 의대 유치가 거론되는 지역에선 벌써 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리고 있다.
결국 '어승정(어차피 승자는 정부)'인 마당에, 정부가 의료계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퇴로를 열어주는 세심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까지 강경 대응을 강조하면서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지만, 어떻든 해결의 실마리는 정부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사표를 내고 의사고시를 미응시한 집단행동에 대해서 일벌백계가 능사는 아니란 이야기다.
결국 교육의 문제
제자들과 개별적으로 통화를 하며 공통으로 던진 질문이 있다. 사실 몰라서 묻는 질문이라기보다 비난이라고 해야 맞겠다. 의사들이 왜 너도나도 서울에서만 일하려 하고, 돈 벌기 쉬운 편한 전공만 찾아가려 하느냐고. 그럴 거면, 사회적 공공성과 윤리 의식을 강조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왜 하느냐고 책망하듯 물었다.
"선생님. 의사는 성직자도 공무원도 아닌, 그저 자영업자일 뿐이에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다고 애국심이 생겨나는 게 아니듯,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그냥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해요. 지금 의대 진학을 꿈꾸는 고등학생 중에 슈바이처가 롤 모델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가식적이거나 철이 덜 든 경우죠. 제 말에 동의하지 않으세요?"
파업에 참여하는 전공의와 의대생 중에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정부의 정책에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여기에 거창한 철학적 고민 따윈 필요 없다. 남보다 내신 성적이 좋았고, 수능 점수가 높았으며, 비싼 등록금을 지불했고, 더 오래 대학을 다녔으니, 더 많이 벌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게 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공공성과 윤리 의식은 '공정성'의 하위 개념일 뿐이다.
여전히 일부에서는 의대에 합격한 아이들의 이름을 학교를 빛낸 인물이라며 교문에 현수막으로 내건다. 어떤 의사로 키우느냐보다 일단 의대에 합격시키는 것이 고등학교의 당면 과제가 된다. 그 와중에 의대생이 된 이들에게 공공성과 윤리 의식을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교사로서 가슴 아픈 고백이지만, 이번 의사 파업은 근본적으로 교육의 문제다.
사족 하나. 몇몇 제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있다. 공공성이 문제라면, 우리나라 의료 체계를 영국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참고로, 영국에서 의사들은 모두 공무원이다. 전에 쿠바의 공공 의료 시스템이 부럽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하니, 후진국인 쿠바 말고 영국의 사례를 들었다면 욕먹지 않았을 거라는 '웃픈'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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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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