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리인생학교 5기 김세민(겨울이)
꿈틀리인생학교
겨울이는 수줍음이 많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반면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해내고야마는 고집과 끈기가 있는 아이다. 그리고 한 번 아닌 건 끝까지 아니어서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은 성격이라 사실 애를 먹기도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겨울이는 역시나 이른 수포자가 되었다. 대신 겨울이는 체육시간에는 '피구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날라다녔고 중학교에 가서는 풍물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장구와 전통악기 등을 능숙하고 빠르게 배워나갔으며 수줍어서 남 앞에 서지도 못하던 아이가 큰 무대에 나가 공연과 대회를 치르면서 재미있게 지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지 못한 성적과 내성적인 성격으로 수업시간엔 주눅이 들어 있고(학교 참관 수업 때 확인) 풍물패 동아리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만 과도하게 올인하는 겨울이의 모습을 걱정하던 차에 호주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분을 알게되었고 우리나라 교육보다 스트레스는 덜 받으면서도 갖고 있는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었다.
다만 겨울이 혼자 가야한다는 것과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것에 부담이 있었으나 겨울이의 성격을 믿었고 마침 겨울이처럼 혼자 가는 동년배가 있어 겨울이의 동의를 얻어 남호주 애들레이드로 떠나보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겨울이는 2년 동안 호주에서 생활하였고 9학년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중3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가족이 아닌 남에게 맡겨진 시간과 공간을 견디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 같았다.
가족곁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을 때 우리 부부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당시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적어 보낸 편지에서 떠나기 전 겨울이의 어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으론 우리도 겨울이와 더 이상 헤어져 있고 싶지 않아 두팔 벌려 환영했다. 문제는 한국에 와서 바로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나는 겨울이 오빠가 초등학교 4학년때 쯤부터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라는 NGO단체를 후원하고 있었다. 국책사업으로 해야할 백년지대계 교육의 정책과 문제들을 묵과할 수 없었던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그 단체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가 되어 고민이었던 내가 경쟁적 사회에서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미약하나마 배운 감사한 곳인데 그곳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고민을 얘기했고 몇 군데 대안학교를 소개받았다.
한국으로 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겨울이에게 소개받은 대안학교를 보내주었다. 겨울이는 그중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본 꿈틀리 인생학교를 서슴없이 선택했고 2018년 12월 16일 기대에 부풀어 귀국했다.
그러나 인생은 맘 먹은대로 되지 않음을 여지없이 확인하는 일이 생겼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로 퍼졌고 팬데믹이 선언되며 꿈틀리 인생학교 입학도 한없이 미뤄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겨울이가 가족과 함께 있는 건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었지만 기대했던 꿈틀리 인생학교는 기숙학교임을 감안하여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끝에 5월이나 되어서야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아까운 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