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에 관한 짧은 생각

코로나 블루에 빠진 당신에게

등록 2020.12.31 13:10수정 2020.12.3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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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다"라는 말이 버릇처럼 입에 착 붙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정말 아무 때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한 달 전, 재택근무를 시작하고부터 증상이 더 심해졌다.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코로나 이후 바깥 나들이가 늘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출근하는 대신에 집에서 일하며 동영상 강의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나는 출근할 때보다 몸도 마음도 두 배는 더 바빠졌다.

공유 화면에 띄울 PPT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미리 보내준 숙제 사진과 동영상 파일을 일일이 검사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집에서 온종일 밀린 일을 하다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넷플릭스를 보며 잠드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자발적 자가격리 상태라고나 할까?

그러다 결국, 오늘 나는 참다 참다 드디어 폭발했다. 눈을 뜨자마자 홀린 듯이 패딩 잠바를 주워 입고 닷새 만에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한파라더니 문을 여는 순간, 차갑다 못해 싸늘한 바람이 콧속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데 숨통이 탁 트이는 것이 이제야 좀 살겠구나 싶었다.

목적지도 없이 무턱대고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고, 마스크 위로 두 눈만 빼꼼 내민 행인들 몇 명이 나처럼 어디론가 바쁘게 걷고 있었다. 괜한 동지 의식이 샘솟으며 뭉클해지려던 찰나에 길모퉁이의 작은 만둣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고, 포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그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커다란 솥에서 막 꺼낸 뜨끈뜨끈한 만두를 받아 들고 돌아서다가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시계를 보니 겨우 오전 11시였다. 친구들은 저마다 회사에 있거나 혹은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가지 못한 아이의 칭얼거림을 달래느라 한창 정신없이 바쁠 때였다.


만날 사람도 또 딱히 갈 데도 없었다. 커피숍에 혼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던 날들이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왔던 길을 터덜터덜 돌아서 다시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포장해온 만두를 꾸역꾸역 입에 넣다가 말고 한 번 더 울컥했다.

"아, 떠나고 싶다!"

집에 '콕' 박혀 혼자서도 사부작사부작 잘 노는, 타고난 집순이인 나도 이런데 평소 나들이를 즐기던 활동적인 사람들은 근래의 일상이 오죽이나 답답할까 싶다. 얼마 전 코로나 확진자가 드디어 천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고향 집에 있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디 나가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하기 위해서다. "안 그래도 그러고 있어!" 괜히 엄마한테 빽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느라고 혼이 났다. 활동 반경이 전에 없이 좁아지다 보니 아무래도 내 마음의 너비도 좁고 옹색해진 모양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중증의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 일상생활이 전과 달라지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가 어느 순간 착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코로나 블루'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내가 그렇다.

그런데 왜 하필 우울감을 뜻하는 말은 '블루'일까? 끝없이 펼쳐진 선명한 바다의 빛,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고 난 뒤 쾌청한 하늘의 색이 파랑, 즉 'Blue'다. 조국의 광복이라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시인 이육사는 '청포도'라는 시에서 '청포도'가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마을에서 '청포'를 입고 올 손님을 기다린다고 노래했다. 벅차오르는 생명력과 청춘, 희망을 상징하던 그 싱그러운 파랑이 정반대의 의미로 가라앉고 있는 하루하루가 안타깝고 또 아쉽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은 생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해 내달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도. 그러니 전에 없이 답답하고 무기력해진 나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정지'의 미덕이 필요한 코로나 시대에 나의 마음이, 그야말로 '마음과 다르게' 자리를 못 잡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떠나고 싶다 조르고 있는 요즘 나는 '파랑'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겨 보려 한다.

부디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우리의 일상에 다시 '파란 불'이 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날을 위해 지금은 잠깐 제자리에서 멈춰선 채, 삶의 목적지를 분명히 하고 운동화 끈을 꽁꽁 동여매야 할 때라고 내 마음을 좀 달래봐야겠다. 조급함을 버리고 오늘의 나보다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2021년 새해 내 첫 소원이다.
#코로나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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