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걱정에 화장대를 버리고, 내 걱정에 화장품을 덜어냈다.
최다혜
비누 하나면 됩니다
한 달 전, 샴푸가 거의 바닥나자 미용실로 갔다. 의자에 앉아 미용사분께 비장하게 부탁드렸다.
"짧게 잘라주세요."
자발적 몽실이가 된 사연은 아이들 그리고 나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다. 조금 더 거창하게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랄까. 나는 비누로 머리를 감기 위해 단발이 됐다. 머리가 짧아야 비누로 감아도 스타일이 사니까.
분리수거만 하면 재활용이 된다는 믿음이 산산조각 난 이후, 샴푸의 플라스틱 통이 거슬렸다. 플라스틱을 집에서 차츰 줄여나가는 중이다. 플라스틱 통을 덜 쓰기 위해,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어 자발적 몽실이가 된 나는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
단발이 된 이후, 비누 하나면 충분하다. 세수에서 머리 감기, 그리고 샤워까지 비누 하나면 된다. 스타일을 비누에 맞추며, 좋아하던 긴 머리를 포기해야 했지만, 생각하는 대로 산다는 즐거움은 꾸밈의 즐거움을 가뿐히 능가했다.
보는 책마다 플라스틱의 위험을 경고했다. 플라스틱은 세상에서 가장 재활용하기 힘든 재질이며, 우리나라 플라스틱의 물질 재활용률은 약 23퍼센트에 불과하다고(<우리는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슬로비). 또한 한국의 인천 해안과 낙동강 하구는 세계 미세플라스틱 오염 2위, 3위를 나란히 달리고 있다고(<2050 거주불능지구> ,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추수밭).
오늘 당장의 수질오염 상황도 좋지 않지만, 더 너머의 시간을 상상한다. 2030년에 우리가 마실 물, 2050년 바다에 물고기보다 많아질 플라스틱이 걱정된다.
식탁도 위험하다.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가 직접 마시는 수돗물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나든다. 각종 동식물의 혈관과 물관 속으로 흘러, 간접적으로 생태계 먹이 사슬을 통해 한 바퀴 돌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먹이 사슬의 최고 꼭대기는 우리, 인류다. 한 영국 슈퍼마켓 조사에서 홍합 100그램당 평균 70조각의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것도 책 <2050 거주불능지구>를 보고 알았다.
기후위기에도 플라스틱은 적이다. 플라스틱은 자외선에 반응하면 메탄을 뿜어낸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더 강력한 온실가스다. <우리가 날씨다>의 저자,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표현에 따르면 '이산화탄소가 보통 두께의 담요라면 메탄은 206cm 두께의 담요'인 정도다.
재활용도 안 되고, 씻고 마시는 물과 식재료 더 나아가 기후위기까지 촉진하는 플라스틱. 이 요망한 물질을 하나도 안 쓰며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줄일 수 있는 만큼은 줄이며 살고 싶었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방편으로서 화장대와 화장품과 긴머리를 차츰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