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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 현지인과 반대로 했다" 광명·시흥 민심 '부글부글'

[현장 르포] 곳곳에 비난 현수막... "왜 야적장 임대수익 포기하나 했더니"

등록 2021.03.10 19:17수정 2021.03.1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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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 667-1,2,3번지(빨간색 부분)에 보상을 노린 수백 그루의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 유성호


고철·유압프레스 매매 단지, 논밭으로 둘러싸인 경기 광명·시흥 외곽 일대. 사람보다 흙먼지를 일으키는 덤프트럭이 더 많이 오가는 곳. 지난달 6번째 3기 신도시 지구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고요했던 이곳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인과 농민들의 마음은 들끓고 있었다.

"그 사람들(LH 직원)이 밭에다 묘목 심고, 밭 쪼개기 해서 원래 나라에서 나오는 보상금보다 더 받게 되면 토지원가가 오르죠. 그럼 전체적으로 분양가가 오를 거 아닙니까. 집을 싸게 사야 하는데, 결국엔 분양받는 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시흥시 과림동 인근 A부동산 중개인 김아무개씨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투기 자체도 문제지만 그에 따른 피해는 결국 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LH에서 땅을 사들일 때 땅값과 건물, 농작물 등 지장물을 감정평가한 뒤 보상하는데 이런 식으로 편법을 쓰면 보상가가 높아진다"며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보상금액이 높아지고 당연히 분양가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메마른 밭엔 3000여 묘목 빼곡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 667-1,2,3번지에 보상을 노린 수백 그루의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 유성호

 
중개인 김씨가 말하는 '편법'은 LH 경기지역본부 직원 강아무개씨가 사들인 것으로 드러난 과림동 667번지와 667-1~3번지 밭 부지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약 5000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땅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묘목 3000여개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묘목들을 감싼 검은 비닐 속 흙은 오랜 기간 방치된 듯 메말라 있었다. 

지난해 2월 강씨가 지인 6명과 함께 사들인 이 밭은 같은 해 7월 각각 1000㎡ 이상의 4개 지번으로 분할됐다. 이른바 '지번 쪼개기'로 보이는 정황이다. 현행법상 개발 시 1000㎡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땅 주인에게 그곳에 건설된 아파트 분양권을 하나씩 지급하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인근 B부동산 중개인 전아무개(64)씨는 "필지를 자르지 않고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경우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그렇게 지번 쪼개기를 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논밭 거래는 많이 없는 편이고, 대부분 지주가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다"며 "외부에서 그렇게 많이 사들였는지 (LH 투기의혹 제기) 이전에는 잘 몰랐고, 그게 LH 직원들인지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가 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보상을 많이 못 받게 된) 지주들의 불만이 많았는데, LH 건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더 안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전씨의 말처럼 광명·시흥지역에는 '광명·시흥시가 LH 쓰레기들 놀이터인가', '정부의 강제수용 개발놀음!! 이제 더는 속지 않는다' 등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나무 심어 임대수익 포기? 현지인은 안하는 행동"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341번지에 용버들나무가 심어져 있다. ⓒ 유성호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341번지에 산수유가 심어져 있다. ⓒ 유성호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341번지(빨간색 부분)에 산수유와 용버들나무가 심어져 있다. ⓒ 유성호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영업 중인 C부동산 중개인 이아무개(58세)씨는 투기로 의심되는 거래의 특징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LH 직원들이 매입했다는 땅들을 보면 하나같이 똑같은 특징이 있다"며 "도로 여건이 좋은 위치에 있고, 묘목을 심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통 논밭이라도 야적장 등 용도로 임대를 많이 한다"며 "그런데 야적장을 다시 농지로 원상 복구한 뒤 묘목을 심는 것은 임대수익을 포기한 것이어서 현지인들 입장에선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게다가 대출까지 받아 땅을 샀다면, 대출 이자까지 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현지인들은 여기가 언제 개발될지 모르니까, 야적장에 하우스를 지어서 당장 임대수익이라도 보려고 하죠. 그런데 LH 직원들은 정반대로 했다고요. 묘목을 심었다는 건 보상수익을 노리고 한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지번 쪼개기 한 땅의 크기가 절묘하게 비슷합니다. 

한 사람당 999제곱미터로 분할한 경우도 있어요. (아파트 분양권) 보상받기엔 부족한 것 같죠? 다른 조그마한 땅을 사고, 합쳐서 1000제곱미터만 넘어가면 보상이 가능합니다. 부동산 중개하는 사람들이나 아는 방법이죠."


이씨는 공기업 직원, 공무원 등 개발계획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들의 투기 행위가 오랜 기간 관행처럼 이어져 오다 지금에서야 드러난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 지역은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 박근혜 정부 때 해제됐는데, 이후로도 신도시로 지정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며 "그때마다 새로운 (개발 관련) 내부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유입됐으리라 본다, 전수조사하면 안 걸릴 공무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LH 건에 대해) 최근 원주민들 사이에선 '죽 쒀서 개 줬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등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죽 쒀서 개 줬다 얘기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9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LH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 유성호


LH 직원이 매입한 땅이 있는 또 다른 지역인 광명시 옥길동 인근의 주민들도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는 박아무개(75)씨는 "이 근처에선 고구마를 제일 많이 심고, 미나리도 많이 심는다"며 "원래 여기 논이나 밭은 매매거래가 많지 않았는데 (LH 직원이 사들인) 논에 있는 버드나무는 지난해 어느 날 아침에 보니 심겨 있었다, 밤 새 심고 간 모양"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20일 전쯤에도 근처 2000평(약 6611㎡) 논이 쪼개기 형태로 매매된 걸로 안다"며 "(논밭을 매입한) 외지 사람들이 농사 짓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LH 투기의혹과 관련해 그는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한편으론 너무 늦게 터진 것 같기도 하다"며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70대 정아무개씨도 "논에다 누가 묘목을 심나, 완전히 잘못됐다"면서 "(나무를 심는 것은) 투기용으로 미리 (개발 계획을) 알고 한 것이다,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비판했다.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 168-2번지(빨간색 부분)에 용버들나무가 심어져 있다. ⓒ 유성호

 
#LH #땅투기 #광명 #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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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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