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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매화를 보러 산청에 가봤습니다

나홀로 탐매 여행... 산청 3매와 운리야매

등록 2021.03.18 15:58수정 2021.03.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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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의 수제자였던 수우당 최영경(1529~1590)이 한강 정구(1543~1620)의 백매원을 방문했을 때 마침 매화가 만발하였다. 봄은 중춘이라 복숭아꽃이 만발한 시기였다. 수우당은 노복을 불러 도끼를 가져오게 하고 정원에 있는 매화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명했다. 

"매화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백설이 가득한 깊은 골짜기에 처하여 절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복숭아꽃과 더불어 봄을 다투니 너의 죄는 참벌하여야 마땅할 것이나 사람들의 만류로 그만두니 너는 이후로 마땅히 경계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며 늦게 피어난 매화를 꾸짖은 일화가 있다.


여명에 집을 나섰다. 특별한 매화를 보러 산청에 가볼 생각이다. 산천재에 있는 남명매도 꽃을 피웠다지 않는가. 한 시간쯤 달려 우선 남사예담촌에 도착했다. 비로소 날은 밝았고 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최씨고가 가는 길로 들어섰다.

국가등록문화재 281호로 지정된 남사예담촌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하-정-최-이-박', 다섯 성씨가 모여 터를 잡고 살면서 각기 앞마당에 기품있는 매화나무를 심었다. 그리하여 수백년 수령의 남사오매가 지금도 꽃을 피운다. 한번 보면 잊지못해서 오매불망매화라고들 한다.

열린 문으로 최씨고가 마당에 들어섰는데 최씨매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까이 가보니 달랑 한 송이만 피어 있었다. 무슨 일일까. 지난해에는 들리지 못했지만 해마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기쁨을 주던 홍매였다. 서운한 마음으로 고가를 둘러보고 이씨고가로 갔다.
 

이씨고가입구에 서있는 수령 300년의 회화나무. 일명 선비나무로 알려져 있는 이 나무아래를 통과하면 금실이 좋은 부부로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김숙귀

이씨고가 입구에는 수령 300 년의 회화나무가 X자 형태로 서있다. 회화나무는 사람의 마음과 머리를 맑게 하는 선비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아래로 통과하면 금슬이 좋은 부부로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씨고가 뒷마당 재실에서 훤칠하게 잘생긴 이씨매를 만났다. 최씨매에서 꽃을 보지 못한 서운함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이씨고가 뒤쪽 재실마당에 서있는 이씨매. 훤칠하게 잘생긴 모습에 최씨매에서 꽃을 보지 못한 서운함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 김숙귀

  

남사마을 곁에 있는 이사재. 조선전기 대사헌과 호조판서를 지낸 박효원의 재실이다. 정유년(1579년). 권율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으로 가던 이순신장군이 하루 유숙한 곳이다. ⓒ 김숙귀

 
박효원의 재실이자 임란당시 이순신장군이 하루 유숙했던 이사재에서 들러 박씨매를 보며 잠시 머물렀다가 산천재로 향했다. 산천재는 남명 조식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바로 앞으로는 덕천강이 흐르고 강건너 천왕봉이 우뚝 서있다.

새로 담장을 두른 앞마당에 남명매가 꽃잎을 활짝 열었다. 한참을 마주 보았다. 임금의 부름을 정중히 사양하고 오직 학문연구와 후학을 기르는 일에만 전념했던 선생의 강직한 성품을 닮은 것일까. 볼 때마다 그 꼿꼿한 모습이 특별한 감동을 준다.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에 남명매가 활짝 피었다. 왕의 출사(出仕)권유도 마다하고 평생 학문과 후학을 기르는 일에만 전념했던 조식선생의 강직한 성품을 닮은 것일까. 남명매의 꼿꼿한 모습이 특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 김숙귀

 
예로부터 충절과 지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매화가 사군자의 처음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같다. 내려오는 길에 단속사지에 들렀다. 통일신라시대 지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단속사는 이제 아담한 삼층석탑 2기와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단속사지 정당매. 고려말의 문신 통정 강회백선생이 유년시절 단속사에서 수학할 때 심었다고 한다. 수령 640 년으로 원줄기는 고사하고 한쪽 곁가지만 살아남아 꽃을 피운다. 원정매, 남명매와 함께 산청 3매로 꼽힌다. ⓒ 김숙귀

 
고려말 문신이었던 통정 강회백선생이 유년시절 단속사에서 수학할 때 심었다는 정당매가 매년 여기서 꽃을 피운다. 수령 640년의 정당매는 본줄기는 고사하고 곁가지만 살아남았다.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피어있는 백매의 모습이 귀하게 느껴진다. 단속사지에서 서쪽으로 300미터쯤 떨어진 들판에 운리야매가 있다.  

단속사지에서 서쪽으로 300 미터쯤 떨어진 들판에 서있는 운리야매도 꽃을 피웠다. 지리산 웅석봉이 바라다보이는 운리들판에서 350 년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들매화다. ⓒ 김숙귀

 
지리산 웅석봉이 바라다보이는 운리들판에서 350년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야매(들매화)다. 그 모습이 마치 지리산을 향해 힘차게 날개를 펼친 독수리처럼 당당하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절개를 지키는 올곧은 선비의 기상을 닮았다.

고절(孤節)한 자태. 산청 남사마을에서 만난 매화들과 단속사지의 정당매 그리고 산천재에서 만난 남명매와 운리야매를 보며 '고절(孤節)'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한 마을을 뒤덮을 만큼 무리지어 피어나 추운 겨울을 지나온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그런 매화가 아니다 외롭게 혼자 꽃을 피우고 서서 자신을 지극히 사랑했던 옛 선비의 고결하고 올곧은 정신을 되새겨보게 하는 매화이다.
#탐매여행 #남사예담촌 #산천재 #단속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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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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