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어만 문제일까? 독일 식민지 과거사 문제

독일의 나미비안 학살 역사로 이해해보는 진척 없는 전 세계 탈식민주의의 이해

등록 2021.03.16 10:47수정 2023.06.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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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압박에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렸던 독일 미테구는 시위에 못이겨 현지시각 지난해 12월 1일 소녀상 영구 설치 결의안을 채택한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미테구청을 보며 서구의 식민지 관련 역사 인식에 대한 보도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다. 홀로코스트 범죄의 통렬한 반성,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램지어 교수나 일본과 달리 모범 사례로 비교되는, 평화를 사랑하는 독일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 사회상과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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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희생자와 달리 유대인 희생을 추모하는 기념물은 베를린에서 매우 쉽게 발견된다. ⓒ 이승주

 
서구 테러리즘의 작가, 독립 언론인 안드레 블책은 아프리카인의 희생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독일을 훌륭한 나라라 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일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으며 현재 그 역사는 어떻게 독일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독일은 1884년부터 1914년 아프리카에 - 현재는 토고, 카메룬, 탄자니아, 나미비아 - 식민 지배를 했다. 1904년, 나미비아의 헤레로(Herero)와 나마(Nama) 사람들의 저항은 독일 정부의 잔인한 대처를 부르게 되는데 헤레로 부족 80%, 나마 부족 약 50%으로 대략 7만5000명 많게는 12만5000명의 나미비아인이 죽임을 당한다. 나미비아인의 저항 후, 독일 신문 더 로컬지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마을 우물에 독을 타거나 저항한 이들을 사막으로 강제이주시켜 탈수증에 의한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혹여 사막에서 돌아오면 이들은 다시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탈진 혹은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오케이아프리카지에 따르면, 강제수용소 여성들은 헤레로 무덤을 파 자신 친척들의 피부를 도려내 두개골을 수집하는 일을 강요 받아야 했다. 그렇게 300여 개의 두개 골은 독일 내 실험실로 보내졌고 상당 수의 두개골이 나미비아로 돌아온 때는 2011년으로 약 10년 전에 불과하다. 마틀라스 옵스뮤어 신문에 따르면 대략 3천 개 이상의 헤레로와 나마 사람들의 두개골이 박물관, 연구 목적으로 독일 대학교로 보내졌고 때로 기념품으로 팔리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이 불편한 식민 역사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독일 더로컬지에 따르면, 살아 남은 희생자 가족은 아직까지도 독일의 공식적인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메르켈 정부는 법적 책임이 따르는 배상의 방식이 아닌 "개발 기금" 형식으로 지원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본으로부터 많이 들어 보았던 대처 아니었던가? 일본 정부의 식민지 범죄에 대한 대처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와 별개로 독일 정부와 일본 정부는 자국 식민지 역사에 거의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역사 앞에 나는 미국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있었던 모렌 도로 (Mohrenstraße)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모렌이란 도로명 "Mohren"은 무어(Moors)의 기원으로 흑인을 경멸하는 단어로 사용돼 아프리카 단체와 탈식민주의 단체로부터 거센 저항 후 2020년 8월 20일 미테구는 Anton-Wilhelm-Amo-Straße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6개월 지난, 어제의 이 도로는 조지 플로이드의 사인만 깔끔히 철거된 채 모렌 도로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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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찾아가본 이젠 깨긋해진 모렌 도로 표지판 ⓒ 이승주

 
그 외 베를린 페테스 알리도로(Petersallee)는 독일령 동아라프카를 창설한 칼 피터 (Carl Peter)의 이름을 땄는데 그는 당시 흑인 여성을 첩으로 삼거나 마을 전체를 파괴하고 반항하는 지역민들을 목 매달아 죽였던 전적이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식민주의의 잔재가 발견되는 지명이 베를린에만 적어도 10개 이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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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렌 도로 옆 건물에 누군가 남긴 "도시를 탈식민지화하자 (DECOLONIZE THE CITY)" ⓒ 이승주

   
평화소녀상을 설치하려는 노력이나 희생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도로명을 바꾸려는 시도를 두고 미래 지향적이지 않은,  괜히 불편한 과거만을 연상케 하여 "분쟁"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비인간(unpeople)'과 인간(people)으로 나뉘어져 있어 우리와 다른 비인간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될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 비판을 거부하고 제국주의가 남겨놓은 이 불편한 역사에 함께 도전해야하지 않을까?
#독일 #전쟁범죄 #나미비아 #인종차별 #비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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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평화학 연구를 했다. 주요관심분야는 농촌 문제,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 탈식민주의, 언론, 환경문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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