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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면 오는 동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사 공모] '이부망천' 오명 때문에 속앓이 했지만... 부천은 이렇게 따뜻한 도시입니다

등록 2021.03.30 08:58수정 2021.03.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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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오마이뉴스>에서는 'OO에 산다는 것'을 주제로 2021년 첫 기사 공모를 합니다. 4월 14일까지 기상천외하고 무궁무진한 시민기자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편집자말]
'이부망천(離富亡川)'. 네 글자의 한자어인데, 비유와 상징이 있다. 나름의 교훈도 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내가 사는 지역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물론이고 주민  대화방에서는 이 얘기가 빠짐없이 오갔다. 누가, 언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낱낱이 전해졌는데,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고 여러 번 들으니 짜증이 치밀었다.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계기는 이렇다. 2018년 YTN의 지방선거 판세 분석 방송에서 한 국회의원이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데서 잘 살다가 이혼 한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라고 말했다. 이를 임팩트 있게 줄여 명명한 것이 바로 '이부망천'이란 말이었다. 그는 당시 이 말을 하며 부천과 인천을 싸잡아 낮게 평가했다. 

명백하게 그 지역에 사는 시민들을 싸잡아 폄훼하고 조롱하는 발언이었다. 그것을 의도했다면 그의 전략은 성공이었다. 공인의 특정 지역 비하 발언에 여론은 정말 잠시 들끓었다. 지나는 말로 아파트 값이 떨어지겠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말을 강제로 들어야 했던 피로감이나 스트레스가 컸지만, 말한 당사자는 책임을 진다며 자신이 속한 정당을 잠시 탈당했다가 반년 뒤 조용히 당에 복귀했다.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 말은 선명하다. 공분했던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장난으로 내뱉는 것도 불쾌해서 의식적으로라도 입에 담기를 삼가고 경계했던 말이다.

신도시란 이름을 가졌지만, 시골의 향취가 진한 곳 
 

부천 상동 시민의 강 산책길에 만나는 시민의 강 ⓒ 장순심

 
짐작하다시피 내가 사는 곳은 부천이다. 이혼하고 온 것은 물론 아니다.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서울에서 부천으로 넘어온 것이 30년 가까이 되어 간다. 부천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신도시로 정리된, 온갖 편의시설에 학군도 괜찮다는 신도시에 운 좋게 자리 잡은 것이 밀레니엄을 막 넘긴 2000년 1월의 일이었다. 내 생애 절반의 시간을 산 곳이니 사실상 고향이나 다름없다.

이곳은 신도시란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시골의 향기가 진하다. 신도시답게 잘 구획된 단지 곳곳에는 공원과 체육시설이, 화단과 자전거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비가 오면 배수가 잘되어 피해 걱정이 없고, 눈이 내리면 지자체에서 바로 치워 말끔해진다. 햇빛이 강렬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게 길가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 있고, 그 밑으로는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공원이든 길이든 산책하며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물멍'도 가능하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넓은 길이 나온다. 반듯하게 십자로 뚫린 길은 유치원과 학교와 공원이 맞닿아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 늘 있는 것이 노점상이다. 찻길엔 과일을 파는 트럭이, 아파트 길을 따라선 좌판이 있다. 맞은편에는 반찬 노점상이 있다. 처음엔 홍어 무침만 팔았는데, 종목이 변화해 이젠 다양한 밑반찬 10여 종을 선보이고 있다.

다섯 켤레에 5000원 하는 값싼 양말을 팔기도 하고, '뻥' 터지는 소리를 내는 뻥튀기 트럭 앞에는 쌀, 보리, 옥수수 등이 깡통에 들어 차례를 기다린다. 아파트 주민들 중에서도 부모님이 농사지었다는 과일과 햅쌀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지 직송 마트 저리 가라일 정도로 좋은 품질에 신선도 만점의 장터다.

매일 뜨개질을 가져와 한 뼘 정도의 땅에 좌판을 벌이는 아주머니도 있다. 퀼트 가방은 물론이고 애견을 위한 털조끼, 열쇠고리 등의 액세서리, 주방용 수세미까지 올망졸망 화려하게 늘어놓고 무심하게 장사인 듯 장사 아닌 장사를 하고 있다. 학교 뒷문을 따라서는 학습지를 판매하는 업체와 요구르트 아주머니, 채소를 조금씩 가져다 하루 종일 다듬어 한 바구니씩 파는 어르신도 이 길의 고정 멤버다.

그 길에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펼쳐진다. 봄볕이 따뜻한 날, 곳곳에 할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은 휴대폰으로 트로트를 크게 틀어 놓고 몸을 움직이며 흥을 돋우기도 한다. 시골의 큰 나무 아래 평상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지켜보는 사람들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노점상 아파트 단지 초입에 자리한 노점상들 ⓒ 장순심

 
신도시 중심에 즐비하게 늘어선 노점상과 그곳이 놀이터인 사람들, 자연스럽게 물건을 사거나 지나치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공간. 이곳은 상생의 법칙이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길가에 늘어선 노점상에 불쾌함을 표하는 이들은 본 적이 없다. 민원도 발생하지 않는다. 누구나 통로처럼 드나드는 이곳은, 이곳만의 특별한 온도가 있다. 수더분하고 격식 없고 푸근하다. 사람들은 깔끔하고, 단정한 마을 길을 오가며 주변도 돌아본다.

단정함과 복닥거림이 함께 있는 공간

나이 들수록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한다. 만약의 상황에서 빠르게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하고, 문화생활도 자유롭게 즐기려면 영화관도 근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걸어서도 병원에 갈 수 있으니 위험의 대비가 충분하다. 걸어서 심야 영화도 즐길 수 있으니 편하게 문화생활도 가능하다.

게다가 걸어서 10분 이내에 재래시장과 백화점, 대형 마트에 닿을 수 있다. 계획적이면서도 느긋하고 사람 사는 향기가 풍긴다. 단정함과 복닥거림이 함께 있는 공간, 이렇게 완벽한 조건을 가진 곳은 쉽게 찾을 수 없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푹 빠져 살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최고의 도시다.

가끔 서울에 가면 우리가 살았던 과거의 흔적을 찾는다. 차로 한 바퀴 둘러보며 우리만의 추억 여행을 한다. 내비게이션 수준으로 길을 잘 아는 남편 덕에 살았던 곳을 찾으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한참을 눈을 더듬어 과거의 모습이 살아나면, '이곳에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아이들을 풀어놓고 휴식을 취하던 골목은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 과거의 우리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바삐 오가는 차들은 아찔한 풍경을 연출한다.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고 살았던 곳에는 지금은 빽빽하게 아파트가 솟아 있다. 주변은 구불구불 좁고 복잡한 그대로인데, 백 배도 더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예전의 정취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곳만의 정겨움은 사라졌고 혼잡함은 더해진 것 같다.

예전과 다른 모습에 과거는 아련해지고, 머릿속은 어수선해진다. 추억 여행으로 찾은 그곳들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해도 지금 사는 곳의 안정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쯤 되면 부천까지 온 나의 여정이 고맙고, 스스로에게 장한 마음도 든다. 누가 뭐라 해도 지금 사는 이곳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살기 편하고 훈훈한 동네라고. 나쁜 말은 정중히 사양하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기사 공모
#부천 #이부망천 #살기 좋은 도시 #따뜻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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