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상동 시민의 강산책길에 만나는 시민의 강
장순심
짐작하다시피 내가 사는 곳은 부천이다. 이혼하고 온 것은 물론 아니다.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서울에서 부천으로 넘어온 것이 30년 가까이 되어 간다. 부천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신도시로 정리된, 온갖 편의시설에 학군도 괜찮다는 신도시에 운 좋게 자리 잡은 것이 밀레니엄을 막 넘긴 2000년 1월의 일이었다. 내 생애 절반의 시간을 산 곳이니 사실상 고향이나 다름없다.
이곳은 신도시란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시골의 향기가 진하다. 신도시답게 잘 구획된 단지 곳곳에는 공원과 체육시설이, 화단과 자전거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비가 오면 배수가 잘되어 피해 걱정이 없고, 눈이 내리면 지자체에서 바로 치워 말끔해진다. 햇빛이 강렬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게 길가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 있고, 그 밑으로는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공원이든 길이든 산책하며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물멍'도 가능하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넓은 길이 나온다. 반듯하게 십자로 뚫린 길은 유치원과 학교와 공원이 맞닿아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 늘 있는 것이 노점상이다. 찻길엔 과일을 파는 트럭이, 아파트 길을 따라선 좌판이 있다. 맞은편에는 반찬 노점상이 있다. 처음엔 홍어 무침만 팔았는데, 종목이 변화해 이젠 다양한 밑반찬 10여 종을 선보이고 있다.
다섯 켤레에 5000원 하는 값싼 양말을 팔기도 하고, '뻥' 터지는 소리를 내는 뻥튀기 트럭 앞에는 쌀, 보리, 옥수수 등이 깡통에 들어 차례를 기다린다. 아파트 주민들 중에서도 부모님이 농사지었다는 과일과 햅쌀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지 직송 마트 저리 가라일 정도로 좋은 품질에 신선도 만점의 장터다.
매일 뜨개질을 가져와 한 뼘 정도의 땅에 좌판을 벌이는 아주머니도 있다. 퀼트 가방은 물론이고 애견을 위한 털조끼, 열쇠고리 등의 액세서리, 주방용 수세미까지 올망졸망 화려하게 늘어놓고 무심하게 장사인 듯 장사 아닌 장사를 하고 있다. 학교 뒷문을 따라서는 학습지를 판매하는 업체와 요구르트 아주머니, 채소를 조금씩 가져다 하루 종일 다듬어 한 바구니씩 파는 어르신도 이 길의 고정 멤버다.
그 길에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펼쳐진다. 봄볕이 따뜻한 날, 곳곳에 할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은 휴대폰으로 트로트를 크게 틀어 놓고 몸을 움직이며 흥을 돋우기도 한다. 시골의 큰 나무 아래 평상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지켜보는 사람들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