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오빠의 과로사, 산재신청을 할 수 없었던 이유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출간 기념 연재 ④] 과로사·과로자살을 인정받는다는 것

등록 2021.03.31 12:04수정 2021.03.31 12:58
0
원고료로 응원
   
a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나름북스


2년 전 나는 오빠를 잃었다. 오빠는 떠나기 3개월 전부터 잦은 야근과 과로에 힘들어했다. 어느 날 오빠는 엄마에게 울며 전화를 걸었다. 힘들다고, 너무 힘들다고. 그리고 오빠는 몇 주 뒤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 

장례를 치르고 오빠가 남긴 블로그와 카카오톡을 뒤적였다. 무엇이 죽음의 공포를 이길 만큼 고통스러웠는지 알고 싶었다. 오빠가 남긴 글에는 '설, 연휴 빠짐없이 오늘도 회사에 출근했다, 월요일이면 숨이 막힌다, 차라리 사고가 나서 쉬고 싶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회사는 고통 그 자체였다.

왜 오빠가 죽었을까?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무엇일까? 염세적인 태도와 학창시절 받은 차별과 상처 등 많은 이유가 떠올랐지만 떠날 당시 오빠를 가장 괴롭힌 이유 중 과로를 빼놓을 수 없었다. 오빠는 이미 물리적으로 많은 업무 시간에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였다.

장례를 치르고 이틀 뒤, 오빠 회사 측에서 연락이 왔다. 임원 및 동료들과 만나자는 제안이었다. 소식을 듣고 두려움이 커졌다. 사측에서 어떤 말과 태도를 꺼낼지, 일단 돈을 건네며 사측의 책임은 회피하고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영화 속 장면이 그려졌다. 나는 뭐라도 정보를 얻고자 노동상담소에 내 이야기를 꺼내놓고 조언을 구했다.

"오빠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한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사측에선 어떤 태도를 보이나요? 사측으로부터 피해보상을 받거나 책임을 물을 수도 있나요?"
"사측에 책임을 물을 순 있지만, 힘들겁니다. 유서에도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면 산재를 승인받을 확률도 낮고, 과로를 증명할 자료를 모으고 동료 증언도 받아야 할 텐데 쉽지 않을거예요."


노동상담소 담당자는 '할 수 있다' 말했지만, 나에겐 그리 들리지 않았다. 뒤따라오는 어렵다는 말이, 가능성보단 희박하단 말이 나에게는 버거운 산으로 느껴졌다. 그래, 해도 안 되겠지. 상대는 돈도 많고 빽도 많은 기업인걸. 행정처리 하고 부모님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지금 충분히 벅찬데...그렇게 나는 관련해서 도움을 요청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빠르게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한국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을 찾았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고 내 차례가 되었다.


"작년에 오빠를 잃었어요. 과로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생각했지만, 산재 신청을 하진 않았어요. 앞으로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오빠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요. 오빠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어요."

나는 그렇게 오빠가 떠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내 사연을 듣더니 한 유가족이 말했다.

"저와 비슷하네요. 저도 과로 자살로 형제를 잃었지만, 유서에는 관련 언급조차 없었죠. 하지만 산재 승인을 받았어요."

나와 같은 상황이었지만 산재 절차를 밟고 승인을 받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요. 도와줄게요. 함께 해봐요."

한 유가족이 "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넸다. 처음이었다.매번 안 될 거라는 말만 들었었다. 힘들고 어렵다는 것만 알려줄 뿐 그 누구도 함께 걸어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먼저 손을 건네지 않았다.

설령 산재 준비를 하는 과정이 유가족이 감당하기 험난하고 잔인한 길이라 할지라도 왜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짚어주지 않는가? 오빠가 죽은 이유를 조금 더 명료화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못이 있다면 책임자는 벌을 받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가? 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잠식되어 주저앉게 만드는가?

오빠가 떠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산재 신청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나와 가족을 돌보면서 과로 죽음을 증명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이라면 모임에 도움을 요청해보길,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라는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고인의 죽음을 증명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고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도 들어보고 당신에게 건네는 손길에 기대어보길 바란다. 부정적인 말들로 인해 너무 이른 포기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과로죽음 그 이후, 남은 우리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http://omn.kr/1sjze)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모임의 김설님이 작성하셨습니다.
#그리고우리가남았다 #과로사 #과로자살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과로죽음 유가족들이 산재법 공부, 심리 치료 등을 함께하며 교류하는 자조모임으로 2017년 결성했다. 고인을 애도하고 과로죽음으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며 과로죽음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민주당 180석 맞힌 '엄문어' "이대로면 국힘 승리, 다만..."
  2. 2 외국 언론이 본 윤 정권의 약점... 이 기사를 제대로 읽는 방법
  3. 3 장관님 명령하면 국회의원 검거... 그러나 검찰은 덮었다
  4. 4 "환자도 전공의도 지키자" 연세의료원장 서신에 간호사들 "황당"
  5. 5 여론의 반발에 밀려 대통령이 물러섰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