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비룡소
그런데 코로나가 우리가 살아왔던 익숙한 관성적 프레임을 벗겨버렸습니다. 기본적으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일, 내가 속한 조직, 사회, 나아가 국가, 그리고 자연과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왔던 '프레임' 자체로부터 우리를 '튕겨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림책 속에 등장한 사람들은 스스로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졌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봉착한 우리들은 본의 아니게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강제로 갖게 된 것이랄까요.
저 역시도 처음에는 늘 발을 구르던 '쳇바퀴'가 사라진 상황에 당황하여 불안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책 속 사람들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듯, 워커홀릭에 가까운 삶에서 방출되어 본의 아니게 게으르게 되니 다른 세상이 열렸습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는 '힘들다'는 호소가 많습니다. 남편이 이래서 힘들다. 상사가 저래서 힘들다 등등. 그런 호소인들에게 스님의 첫 번째 해답은 '정 힘들면 하지 말라'입니다. 남편이 자기 멋대로라 정 견디기 힘들면 결혼 생활을 그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상사가 힘들면 회사를 그만 두면 된다고 합니다.
스님이 때려치라고 부추키시는 걸까요? 아닙니다. 스님이 주시는 '화두'는 누구 때문이라 핑계를 버리고 자기 자신을 '직시'하라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마치 제가 가정 경제의 십자가를 홀로 지고 있는 양 거드름을 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쉽지 않은 상황에 대한 정신적 부담이 버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리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지요.
코로나 때문에 강제로 생긴 '여유'로 비로소 저만의 깊은 우물에서 빠져나와 너른 하늘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인생의 반환점을 돈 초로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리 애써 무언가를 해야 할 것도 노력해야 할 것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가정 경제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더는 채워지지 않는 텅빈 하늘과 같은 제 삶이 다가왔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저의 소회입니다. '멈춤'의 시간이 없었다면 여전히 저는 무언가를 핑계대며 자신을 다그치며 살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자신을 포장했을 것입니다. 주변을 살피는 대신 제 자신을 우물 속에 가두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