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포기하면 죽을 때까지 못 배울 거라는 생각에 개인 강습으로 돌려 수업을 받았다.
elements.envato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의 어릴 적이 생각났다. 친정엄마가 딸을 돌봐주셨는데 어느 날, 내가 퇴근해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게?" "무슨 일이 있었는데?"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다 "아기가 걸었어!"라고 말씀하셨다. "소파 끝을 잡고 걷다가 어느 순간 딱 손을 떼고 걷는 거 있지." 난 소리를 지르며 바로 딸에게 뛰어가 잘했다며 꽉 껴안아 주었다.
말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딸이 엄마, 아빠, 아야, 라는 말만 하다가 15개월쯤 '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비 오는 날, 같이 가는데 딸이 내리는 비를 보며 끊임없이 '비'라고 말했고 그게 얼마나 귀엽고 듣기 좋았던지 나도 딸의 말을 계속 따라 했다.
그뿐인가.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 처음 퀵보드를 탈 때, 처음 피아노를 칠 때, 처음 자전거를 탈 때. 딸이 망설이고 힘들어할 때마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아이는 응원에 힘입어 조금씩 능숙해졌고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딸은 지지해주는 어른들의 응원을 힘입어 모든 도전에 성공했는가? 그건 또 아니다. 지지와 응원이 있어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으면 포기하게 된다.
아이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실력이 영 늘지 않았다. 피아노를 친 지 삼 년이 넘어서야 겨우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에 들어가긴 했으나 결국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만두었다. 그에 반해 합기도는 심사가 있을 때마다 띠가 바뀌더니 일 년도 되지 않아 검은 띠가 되었다. 지금은 시범단까지 하고 있다. 도전하는 마음과 주변의 지지만큼,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다.
수영을 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친구의 말에 마흔 살에 덜컥 수영 강습을 신청했다. 역시나 몸치인 나는 우리 레인에 교통 체증을 유발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못 견디는 나는 확 그만둬 버리고 싶었지만 물이 내 몸에 닿아 찰랑거리는 그 촉감이 참 좋았다.
이번에 포기하면 죽을 때까지 못 배울 거라는 생각에 개인 강습으로 돌려 수업을 받았다. 내 몸이 물 위에 뜨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경험은 날 신나게 했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만나는 사람마다 "너 수영할 줄 알아?" 하고 물으며 수영 얘기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과 일대일로 하는 수업도 좋았지만 탈의실에서 서로의 수영 자세를 알려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수영장에 가지 못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초급반으로 가서 단체 레슨을 받아 볼까 보다.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서른 후반에 시작한 나의 글쓰기는 '한번 해 볼까?' 하는 시도와 글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와 열정 그리고 '아, 아직도 이 정도라니. 때려쳐' 하는 순간마다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에 계속하고 있다.
글쓰기 강좌를 신청하기 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 내 글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신청을 망설였다. 하지만 '우선 해보자, 아님 말고'라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그 글쓰기 강좌 덕에 새로운 친구들을 얻었고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그래, 내가 항상 의지박약했던 건 아니야. 나에게 관용을 베푼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하니 운전뿐만 아니라 도전했다 포기한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드로잉도 스쿠버다이빙도 스키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배웠지만, '아. 막상 해보니까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하다 그만두었다. 나의 열정과 의지가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하고 나니 미련은 남지 않는다.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알 수 없다.
성공적인 도전은 '한 번 해볼까?' 하는 시도와 자신의 열정과 의지, 주변의 지지로 이루어진다. 그럴 때 그 도전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실 우리는 끝없이 많은 도전의 시간을 거쳐 어른이 된 사람들이다. 많이 고민하지 말고 '우선 해보자, 아님 말고'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어쩌면 그 도전이 자신의 인생을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공유하기
어른이 된 사람들이 까맣게 잊고 사는 한 가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