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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연장'이 가득... 이런 파스타집은 난생 처음

[인터뷰] 노순배 파스타 공작소 셰프... "손님과 소통하려 끊임없이 노력"

등록 2021.05.02 12:11수정 2021.05.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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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가 지금 만드는 파스타는 라비올리입니다. 돼지고기, 리코타, 시금치 등의 재료를 소로 넣었어요. 흔히 만두형 파스타라고 하는데, 아직 대중들에겐 낯선 파스타예요. 대신 마니아층의 선호도는 높습니다."


파스타 하나 만들어 줄 수 있냐는 요청에 노순배(50) 셰프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가 만드는 파스타는 라비올리. 이탈리아의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변형된 파스타다. 북부 피에몬테 지방에서는 아뇰로티, 볼로냐 지방에는 토르텔리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 들른 손님 중 몇몇은 얼떨결에 파스타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상암 서울 월드컵 경기장 인근. 주택가 골목을 휘감아 내려가면 웅크린 고양이처럼 작게 자리한 '파스타 공작소'가 있다. 노 셰프가 혼자 운영하는 1인 레스토랑이다. 각양각색의 파스타 면을 직접 만드는 곳이다. 이름하여 '생면 파스타'.

식당 이름에 공작소가 들어가는 것은 파스타 면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영업시간 외에는 파스타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파스타 교실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배운 솜씨와 27년 경력이 담긴 비법을 고스란히 알려준다. 그러니 현역 셰프도 이곳에 들러 비법을 배워간다.
 
 가게 왼쪽 벽면에는 언제부터 쌓아뒀을지도 모를 수많은 파스타 제작 도구들이 즐비하다.

가게 왼쪽 벽면에는 언제부터 쌓아뒀을지도 모를 수많은 파스타 제작 도구들이 즐비하다. ⓒ 서형우

 
지난 23일, 파스타 공작소를 직접 방문했다. 이곳은 박물관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공간이다. 가게의 왼쪽에는 언제부터 모은 것인지 모를 만큼 다양한 파스타 제작도구들이 즐비하고 테이블 위쪽 벽면에는 파스타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들이 가득 걸려 있다.

"파스타는 대중화 됐지만 이탈리아 현지 음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낯설어요. 저는 그런 차이를 좁히기 위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한가한 날에는 손님들이 직접 파스타 제면하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해요. 대부분이 관심을 가지고 즐거워하죠. 메뉴를 주문할 때는 해당 파스타의 유래부터 특징과 먹는 방법까지 이야기를 해드려요.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는 점이 '파스타 공작소'의 특징이에요."

음식은 먹기만 하면 된다고요? 소통을 해야죠!
 
 파스타를 만들다 말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파스타를 만들다 말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 서형우

 
노순배 셰프는 30년 가까운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이탈리안 셰프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의 어릴 적 꿈은 요리사였다. 보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위해 수도권으로 상경, 경기대학교 조리과에 편입했다.


졸업 후 더 넓은 세상에서 요리를 배우고 싶었던 그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현지에서는 미쉐린 원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공부는 그만두지 않았다. 이탈리아 요리연구가라고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연구를 하고 또 했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이렇게 소통을 강조하게 됐을까.

"이탈리아 중부 지방에 위치한 생면 파스타 장인 클라우디오의 업장에 파견나갔을 때였어요. 그때는 참 어정쩡했죠. 손님을 어설프게 대했어요. 그러자 저에게 갑자기 클라우디오의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파스타 하나만 배우러 왔다면 당장 돌아가라고 말이죠. 며칠 뒤 그는 제게 화난 이유를 설명해 줬어요. 음식이 맛있고 없기 전에 손님과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그날 깨달았습니다. 장인 정신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터득한 기술을 넘어 손님과 소통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각양각색의 재료를 넣어 반죽한 라비올리

각양각색의 재료를 넣어 반죽한 라비올리 ⓒ 서형우

 각양각색의 재료를 넣고 반죽한 라비올리

각양각색의 재료를 넣고 반죽한 라비올리 ⓒ 서형우

 
'파스타 공작소'는 생면 파스타 맛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난생처음 보는 기하학적 형태의 생면 파스타 제면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클래스는 보통 월 3회로 진행되며 코로나 때라 참가 인원은 4명으로 제한한다. 클래스에서도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파스타를 소재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다.


"저는 단순히 파스타를 가르치는 것에 의의를 두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집집마다 고유의 파스타가 있어요. 한국에 김치 맛이 서로 다르듯이. 그러니 하나의 파스타만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죠. 이를테면 '가르가넬리'라는 파스타가 있다고 하면, 이 파스타의 유래나 이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생각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수강생들은 재밌어하죠."

파스타를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내는 노 셰프의 모습은 마치 그 옛날 무성영화(無聲映畫) 시대에 스크린에 펼쳐지는 장면을 관객에게 설명해주는 변사를 연상케 한다. 이렇다 보니 만담꾼 노 셰프의 이야기를 들으러 이탈리아인 여성 셰프부터 아흔 살 할머니까지 국적, 연령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원데이 클래스 때였어요. 아흔 살 가까이 되는 할머니를 모시고 아들과 며느리가 찾아왔죠. 할머니께서 연세가 있다 보니 수업에서 자꾸 따로 노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파스타 만드는 법을 알려줬는데 그런 거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칼국수 만들 듯이 당신 스타일대로 만들더라고요. (웃음)"

가장 좋아하는 건 타야린... "라멘 같아서 좋대요"

노 셰프의 소통은 단순히 음식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고객의 니즈를 분석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능한 한 빠르게 아는 게 중요하다고. 사실 생면 파스타와 이탈리아 현지 음식은 일부 마니아층의 전유물이다. 이미 한국식 파스타라고 부를 만큼 대중화된 맛이 존재한다. 이탈리아 셰프로서 현지 맛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는 고집쟁이 셰프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고객의 입맛이다.

"이탈리아 현지의 음식을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큰 고민거리입니다. 입맛도 안 맞는데 이게 전통이라며 이것만을 먹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아요. 까르보나라는 원래 생크림은 하나도 안 들어가고 노른자의 꾸덕한 질감으로 먹는 건데, 한국인들은 그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전 일부러 소스를 묽게 하는 편입니다. 파스타 면도 이탈리아 현지보다는 조금 더 익혀서 나갑니다."
 
 노른자로만 반죽해 색깔이 샛노란 타야린 파스타. 특히 인기가 많다.

노른자로만 반죽해 색깔이 샛노란 타야린 파스타. 특히 인기가 많다. ⓒ 노순배

 
노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면은 타야린이다. 타야린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에서 만들어진 얇고 납작한 파스타다. 노른자를 듬뿍 넣어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타야린을 손님들은 종종 라멘 같다고 말한다. 익숙함에 자연스레 끌리는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노 셰프는 이렇게 답했다.

"여기서 딱히 더 하고 싶은 건 없어요. 손님들과 이야기하며 계속 파스타를 만들고 싶어요. 파스타 공작소는 성별, 연령, 국적, 지역, 학력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입으로 먹고 사연으로 즐기는 파스타 레스토랑. 이 분위기를 꾸준히 유지하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노 셰프는 최근 트렌드에 발맞춰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비건 파스타 레시피를 소개했다. 철저히 육식파지만 비건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가 제안한 레시피는 시칠리안 페스토 파스타. 선드라이 토마토, 견과류, 올리브 오일, 바질을 갈아 만든 이 파스타는 올리브 오일과 바질의 파릇한 향과 선드라이 토마토의 톡쏘는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시칠리안 페스토 파스타 레시피

노순배 셰프의 레시피를 참고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았다. 부엌 사정상 레시피와 재료의 일부가 변경되었다.
 
 노순배 셰프의 레시피를 참고해 직접 만든 시칠리안 페스토 파스타

노순배 셰프의 레시피를 참고해 직접 만든 시칠리안 페스토 파스타 ⓒ 서형우

 
재료: 바질 10g, 이태리 파슬리 10g, 소금 5g, 마늘 1/3개, 페퍼론치노 1개 올리브유 100ml, 구운 헤이즐넛 30g, 선드라이 토마토 140g

1. 위에 적힌 모든 재료를 블랜더에 넣고 갈아주면 시칠리안 페스토 완성. 단, 페스토가 너무 뻑뻑할 경우 물을 넣어 농도를 맞준다.

2. 스파게티 면을 물에 넣고 삶는다. 이때 끓이는 물은 바닷물 정도의 짭짤한 염도를 유지한다.

3. 원하는 식감에 맞게 면을 삶은 후 볼에 담고 시칠리안 페스토를 선호에 따라 넣어 비벼준다. 이때 농도가 알맞게 되기 위해 면수를 약간 넣는다.

4. 그릇에 담고 구운 헤이즐넛을 다져 뿌린다.
#파스타공작소 #파스타맛집 #파스타 #생면파스타 #상암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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