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 청소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시교육청으로부터 교무실 등은 교직원이 직접 청소하거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공문이 내려왔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처다. 인권위는 교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을 학생들에게 청소하도록 하는 건 헌법상 인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라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제 교실 청소하는 것도 마뜩잖게 여기는 마당에 자발적으로 교무실 청소를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아이들에게 동의서를 받을 게 아니라면, 교무실은 그냥 교사들이 청소하라는 뜻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일부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청소는 인성교육을 위한 잠재적 교육 활동의 일환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일부 교육청에서조차 교장실이나 교무실 역시 학교 교육의 현장이라며 인권위 결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동료 교사들 다수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들이 교무실을 청소하도록 학교가 강제 배정하는 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오랜 관행이었던 까닭에 학창 시절부터 교사가 된 지금껏 그것이 문제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며 반성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공문으로 하달돼 관철되는 모양새라는 점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학생회에서 조심스럽게 이 문제가 논의되고 있었다. 운동화를 신고 건물 안을 출입하는 문제, 교복 착용과 디자인 교체 문제, 명찰 패용에 관한 문제 등과 함께 한창 의견이 수렴되고 토론하는 와중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일과 중에 겪는 불편함이나 불합리한 점에 대해 주저 없이 발언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대개 학생회장 선거 때 후보자들의 공약도 그런 목소리들을 듣고 요약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교사들도 여러 안건에 대한 학생회의 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사안에 견줘 아직 목소리가 미미하긴 하지만, 교무실 청소는 교사가 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다. 학생 인권 침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는 드물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비우는 정도가 전부인데 굳이 학생들을 배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교무실은 교사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이 찾아오는 사랑방이자, 상담실이며, 이따금 학부모들과 면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대개 개인별 칸막이가 설치돼 있고, 교무실 한쪽엔 차담을 나눌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된 곳도 있다.
곧, 교무실은 교사 개인별 독립 공간이자 공용 공간이다. 그래선지 청소 시간이라도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걸 흔쾌히 여기는 교사는 거의 없다. 아이들이 보면 곤란한 문서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기도 하고, 주변이 너저분하면 그들에게 치부를 들킨 것처럼 찜찜한 탓이다.
앓느니 죽는다는 교사도 많다
특히 젊은 교사들일수록 아이들의 교무실 청소를 극구 반대한다. 다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실제 그들은 자기 책상과 사물함 주변은 물론, 복사기가 놓인 곳 등을 무시로 정리하고 쓸고 닦는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자신의 눈에 거슬리거나 필요해서 하는 행동이다.
물론, 교무실 청소 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청소 시간이 되면 교사들 모두 자리를 비워 아무도 없는데, 그럼 교무실은 누가 청소를 하느냐는 거다. 교사마다 담당 구역이 정해져 있어 그곳에 배정된 아이들의 출석을 확인하고 함께 청소한다.
학급 담임교사는 해당 반 교실과 복도, 계단 등을 맡고, 기타 특별실과 도서관, 운동장 등은 교과 담임교사의 몫이 된다.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의 경우엔 교사 한 명의 담당 구역이 청소 시간에 다 돌아볼 수 없을 만큼 넓다. 이럴진대, 아이들에게 교무실 청소를 시킬 여력이 없다.
공문 내용을 두고 몽니 부리듯 토를 다는 이들도 더러 있다. 교사들 공간은 교사가 청소하고, 아이들 공간은 아이들이 청소하도록 내버려 둬도 된다는 거냐며 발끈했다. 청소 시간에 교사가 임장하는 건 중요한 교육 활동의 일환인데, 이를 부정한 꼴 아니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앓느니 죽는다는 교사도 많다. 아이들에게 교무실 청소를 시켜 봐야 되레 더 지저분해진다는 거다.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놓고 가버리는가 하면, 바닥에 물기만 흥건하게 발라놓기 일쑤라고 못마땅해했다. 청소 시간에 그냥 허드렛일이나 잠깐 거들게 하고 보내는 이유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어렵다는 미적분 문제를 술술 풀어내는 아이들이 청소에는 젬병이다. 다 큰 고등학생조차 청소 요령을 일일이 가르쳐야 할 정도다. 비질과 물걸레질의 순서를 뒤바꿔서 하는가 하면, 물걸레질한 뒤 그 위에 기름걸레로 닦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다반사다.
믿기지 않겠지만, 기름걸레를 처음 봤다는 아이도 있고, 심지어 물걸레질을 처음 해봤다는 아이도 있다. 학급 회의 시간에 돈 모아 로봇 청소기를 마련하자고 건의하는 아이가 있을 정도다. 가정에서 가르치지 않은 청소는 어느덧 학교가 책임져야 할 교육 내용이 됐다.
해본 적도 없고, 익숙하지도 않은 청소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할 리 없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고 하고, 한다고 해도 시늉만 할 뿐이다. 아이들이 청소한 곳을 담당 교사가 다시 쓸고 닦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외부 출장이라도 갈라치면, 청소 시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려되는 건 또 있다
아무튼 공문이 접수됐으니 학교는 상명하복해야 할 일만 남았다. 별도로 아이들의 자발적인 신청을 받든, 교내 봉사활동 시간을 부여하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자칫 교무실조차 화장실처럼 외부의 청소 용역을 의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교육청으로부터 하달된 공문이 아니라, 학생회의 문제 제기와 교사들의 논의, 토론 등을 거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공문의 내용과 상반된 결론이 나올 리는 없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이 훨씬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논의가 막 시작됐는데 결론부터 내려져서 다들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이젠 아이들도 인권위 결정과 취지를 들어 알고 있다. 강제 처벌 규정은 아니라 해도, 학교가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아이들의 문제 제기와 토론의 성과물이 아니라 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교사들이 복종하는 모양새여서, 선수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거다.
과거 시도 교육청별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때와 비슷한 형국이다. 비록 소수이긴 했지만, 학교마다 학생회를 중심으로 머리 모양과 복장 등 용모 규정과 상벌점제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진보 성향의 교육감과 교사들에 의해 틀이 완성되고 하달됐다. 오랫동안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온 결과라고 했지만, 아이들에겐 '시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려되는 건 또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건의한 건 이내 무시되거나 반영이 된다 해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데, 달랑 한 장짜리 교육청의 공문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그들이 새삼 깨달았다는 점이다. 한 아이는 학교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관료주의적 집단이라고 꼬집었다.
아이의 지적처럼, 상명하복에 자유로울 수 있는 학교는 없다. 이는 우리 학교 교육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적폐다. 교사의 교육 활동은 공문에 살고 공문에 죽는다. 복무규정 외에도 자발적인 교육 활동을 제약하는 지침이 수시로 하달된다.
인권위의 결정 취지와는 상관없이, 내친 김에 학교 건물 전체 청소를 외부 용역에 맡기는 게 낫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위한 배려라며,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자칫 이번 일로 아이들에게 청소는 교육적이지 못한 일로 낙인찍히게 될까 두렵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국가인권위 결정을 아이들이 '시혜'로 느낀다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