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귀신님' 한 장면.
tvN
진정한 십 대가 돼서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친구들하고 컵라면 먹는 거."
아이가 다니는 학원 일 층에는 편의점이 있는데 나도 가끔 그곳에서 컵라면을 먹는 학생들을 본 적이 있다. 아이는 내심 그 언니 오빠들이 부러웠나 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아이는 실행 날짜를 한없이 미뤄야 했다. 코로나19가 조금 진정세로 바뀌고 다시 학원과 학교를 가게 되자 아이는 잊지 않고 자신이 말한 바를 바로 실행에 옮긴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같이 실행에 옮길 동지를 찾는다.
"너 다음 주에 학원 끝나고 나랑 편의점에서 라면 먹을 수 있어?"
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한 명이 손을 들어 주었다. 그 주 주말, 마트에서 아이는 안 매워 보이는 여러 종류의 컵라면을 카트에 넣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컵라면을 모르니 친구와 편의점에 가기 전에 미리 알아놔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건 아이에게 정말 의미 있는 행사인가보다. 그 시간을 기대하는 딸의 마음이 느껴졌다. 마트에서 사 온 컵라면을 집에서 먹으며 난 아이에게 컵라면 뚜껑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컵라면 뚜껑을 버리면 안 돼. 뚜껑을 뜯은 다음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어. 그다음 한쪽을 벌리면 이렇게 깔때기 모양의 그릇이 되지. 여기에 뜨거운 라면을 덜어 식혀 먹는 거야."
난 엄청난 기술을 알려주는 듯한 기분이었고 그 기술을 전수받는 아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오! 알았어. 나도 한 번 해볼래."
아이는 내가 접은 뚜껑을 다 펼쳐 다시 처음부터 접는다. 깔때기 모양의 그릇을 만들고 나서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하는 라면을 생각하니 나의 성장과 함께했던 라면도 생각난다.
고등학교 매점에서 쉬는 시간에 후다닥 먹던 라면, 선생님 몰래 수업시간에 먹던 생라면, 대학교 학생식당에서 천원이면 밥까지 리필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던 라면,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먹던 라면.
코로나19로 아이가 집에서 끼니를 다 먹는 경우가 많아지니 일주일에 한두 번은 라면을 끓이게 된다. 그냥 라면만 끓이는 건 좀 찔려서 라면에 콩나물을 듬뿍 넣고 비싼 파도 송송송 많이 썰어넣고 계란은 필수로 넣는다. 아이 그릇에 라면을 떠줄 때 콩나물이 라면의 면보다 더 많이 떠지도록 신경을 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매일 세끼를 차려야 하는 요즘, 뭘 해 먹냐는 질문이 꼭 나온다. 카레를 해 주지, 장조림을 해 주지, 그냥 고기랑 야채를 주지, 이런 말들이 오고 가는데 난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으로 툭 말했다.
"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라면을 끓여주게 되더라. 힘들어서 다 못 차리겠어."
핀잔을 받을 줄 알았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전과 다르다.
"나도 그래. 일주일에 한두 번은 그렇게 되더라고."
"맞아, 맞아. 맛있고 편하고 그런 음식이 드물지."
마음이 편해졌다. 싸고 맛있고 끓이기 편한 라면. 나의 성장과 또 우리 아이의 성장과 함께 하는 라면. 역시나 라면은 고마운 음식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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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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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라면 먹기" 10대가 된 아이가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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