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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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그럼 너는 뭐하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난 이제 집안일이 지겨워졌다. 25년 동안 집에서 논다는 소리를 들으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지쳤다. 그래서 엄마 파업을 선언했다. 옆지기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한다. 이제부터는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자고 한다.
그는 많은 부분 가사 일을 솔선수범한다. 주말에는 내가 하던 일을 그가 대신 한다. 힘든 표정 하나 없다. 오히려 즐거워 보인다. 그는 50여 년 동안 엄마가 형수가 아내가 해준 밥을 먹으며 부엌과는 별 상관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장을 봐서, 다듬고 씻고 자르고 끓이고 볶고 무치고 조리고... 부엌은 그에게 신세계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하는 것이 힘들다. 아니, 솔직히 가족이라는 짐이 무겁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왜 내 어깨가 이렇게 무거울까 생각했었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의 어깨가 무겁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남편까지 짐이 되어 내 어깨에 떡하니 얹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자립적이 되어 많이 가벼워졌지만.
나 홀로 집에
옆지기는 휴가를 내고, 막내는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둘째는 하던 공부를 잠시 내려놓고 2박 3일 남원 여행을 계획했다. 그는 나에게 몇 번이나 같이 가자고 한다. 둘째도 엄마는 안 가느냐고 물어본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집콕 탈출이냐, 가족 탈출이냐.
결국 나는 가족 탈출을 선택했다. 집콕 탈출보다 가족 탈출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래 아이들과 남편으로 도배된 삶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려나 싶었을 때, 코로나가 다시 발목을 잡았던 시간이 벌써 1년 3개월이다. 이것이 가족여행에서 살짝 빠져나와 혼자가 될 수 있는 기회, 꽉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5년 만에 나 홀로 집콕! 해방이다! 그런데 웬일? 그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2박 3일 여행길에 12번이나 전화를 한다. 연신 사진도 보내온다. 같이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홀로 있는 나에 대한 배려였을까. 좋게 좋게 생각하자.
밥 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내 일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밥 먹는 것도 잊어 먹고, 영화 리뷰를 쓰며 저녁 8시를 훌쩍 넘긴 게 흐뭇하기까지 했다. 아이들과 함께였다면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